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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한스펀지 Oct 17. 2020

난 스무살에 요절할 천재일 줄 알았다





1997년 데뷔해 2000년대 초를 주름잡던 가수가 있다. 2집의 <낭만고양이>부터 3집의 <오리날다>와 <달빛소년>, 4집의 <Happy day>, 리메이크 음반의 <느껴봐>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메인 보컬은 '국보급 보컬'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던 전설의 록 밴드이다. 바로 지금도 온라인 콘서트를 열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체리필터이다.


체리필터의 <Happy day>는 이렇게 시작된다. "난 내가 말야 스무살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 어릴 땐 말야 모든 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지금 보면 웃긴 얘기지만 난 이 가사를 곧이곧대로 믿었고 진심으로 내 얘기일 줄 알았다. 난 스무 살쯤 요절할 천재일 줄 알았고 중학생 때부터 [짧고 굵게 살 거니까 하고 싶은 대로 살자]가 신조였다.


천재라고 믿었던 것은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다. 모든 어머니가 하는 "우리 아이는 똑똑해, 특별해, 천재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정말 내가 똑똑하고 특별하고 천재인 줄 알았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첫 학기에 전교 10% 안에 들어간 것, 안 배운 내용이지만 내 식대로 수학 문제를 풀어버린 것 등이 이 생각을 뒷받침했다.


물론 지금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만한 일이지만, 어린 시절엔 '내가 천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들이라 여겼다. 그래서 더더욱 '난 천재고 어린 나이에 요절할 거야'라는 생각이 굳어졌었다. 이쯤 되면 이 말이 농담이 아닌 100% 진담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진심으로 난 내가 어린 나이에 요절할 천재일 줄 알았다.




천재의 요절 나이가 되면서 반대라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내가 천재라면 스무 살쯤 요절해야 되는데 아직 살아있는 모습을 보며 '평범한 사람인가?' 의심했고 중·고등학교의 작은 세상에서 대학교라는 큰 세상으로 나가며 여러 가지 일들이 내가 정말 평범하다는 것을 증명해 줬다. 이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엔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많았다. 10분 거리의 학교에 고급 외제차를 타고 온 사람과 학교를 다니며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선배 등이 그 예다. 그 특별한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특별하지 않음'을 느꼈고 점차 '나도 평범하구나'로 향해 나아갔다. 이 생각의 흐름은 원래 내 것이던 것을 빼앗기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엔 자기 합리화가 시작됐다. 특별한 사람들을 보며 '나도 특별한 사람이니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가졌다. 속으로 그 사람들을 깎아내리기도 하고 나 자신을 스스로 북돋기도 하며 결국 나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합리화했다. 그러지 않고선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니까.


다음엔 특별함을 증명해 줄 무언가를 찾게 되었다. 바로 술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많은 친구들을 술 세계로 인도하며 술부심을 부리며 니 주량이 세냐 내 주량이 세냐 등으로 우월감을 느꼈었다. 이는 평범함을 인정할 수 없는 대학교 시절까지 이어져 특별함을 증명해 줄, 특별함이란 밧줄을 잡을 용도로 사용됐다.


20살, 21살, 22살의 3년은 대학을 다니기보단 '난 아직도 특별하다'는 것을 붙잡을 시기로 활용했다. 즉 술이란 매개체를 통해 특별하다는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고 365일 중 350일을 술자리로 보냈다. 술자리에서 한 명이라도 취하는 사람이 있어야 아직 안 취한 내가 특별하다고 여겼기에 하루하루가 폭음의 시간이었다.


안타까운 3년의 시간을 거쳐 군대에 들어갔고 비로소 '난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모두가 똑같은 빡빡이었고 특별할 것이 없는 상하 구조의 명령 하달 방식은 평범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 명이라도 특별함을 나타낸다면 연좌제 식의 얼차려를 받게 되었기에 반강제적으로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비로소 평범함을 받아들인 시기였다.




평범함을 받아들이기까지는 25년이 걸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난 특별해'라고 믿었고, 이를 부정하는 상황이 있을 땐 특별함을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을 찾아다녔고, 3년이란 세월을 술이란 독에 빠져 20대 초를 보냈고, 2년의 군대를 다녀온 후 평범한 20대 후반을 살고 있다. 이전까지의 삶을 한 문장으로 보자면 '특별함을 놓지 못하는 삶'이었다.


물론 술이란 것이 특별함을 증명해 줄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 다르게 보면 특별함을 증명하는 것보단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을 받아들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단순히 평범한 순간, 평범한 느낌을 회피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술을 활용했다. 술자리마다 폭음을 주도했고 만취 상태에서 오는 특별함을 즐겼다. 그땐 그랬다.


비로소 평범하단 것을 받아들였다. 이전까지의 삶이 특별함에서 시작해 평범함을 거부하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평범함에서 시작해 특별함을 동경하는 삶을 살고 있다. 25살 기준으로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전까지는 천재로써 요절하길 내심 기대했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요절할 생각이 없다.


아마 정말 내가 특별했다면 극과 극의 인생을 살을 듯하다. 최선은 물론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잘 사는 것이고, 최악은 범죄자로 이미 수감되지 않았을까 싶다. 평행세계에 사는 너, 어떻게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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