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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커피 Jun 24. 2019

10. 순례길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10일차

2008년 8월 13일(수) [카미노10일] Padron - Santiago De Compostela (23.9km)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여 10일차, 드디어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이다. 일찌감치 5시 좀 넘어 출발했다. 조금만 걸으면 최종 목적지라는 생각에 힘이 펄펄 나야 할텐데, 출발 몇시간만에 산티아고 시가지에 들어서고, 대성당 도착전 마지막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왠일인지 힘이 빠지는 느낌. 


이상하다, 내가 생각한 산티아고 입성은 이런 것이 아니였는데.....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긴장이 풀린건지. 카미노가 끝나간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순례가 끝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이 순례길의 목적지이지만, 그 도시, 그 성당 자체가 이 순례길의 목적은 아니다. 실제로는 그곳까지 가는 도보순례 여정을 겪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기에... 단지 산티아고는 그 여정이 끝나는 종착지일 뿐이다. 그렇게 보면 목적지라는 표현보다 종착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그렇게 걷고 걸어 드디어 11시경에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카페

산티아고 대성당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카페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올라갔다. 물론 술 좋아하는 우리 일행이 무알콜로 입성할리는 없다 ㅋㅋㅋ 시원한 맥주 한 잔 부터. 앉아서 쉬면서 땀이 식으니 춥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산티아고 도착하기 이삼일 전부터 기온이 많이 내려갔던 것 같다. 시기는 8월 중순임에도 서울의 가을 날씨 같았다고 할까?

산티아고 대성당, 2008

이제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웅장한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고 감동이 밀려왔다.

순례자 등록 사무소 입구

이 문으로 들어가 이층 사무실에서 순례증명서를 받았다. 증명서 발급은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무료 발급인데, 증명서가 구겨지지 않게 말아 넣을 수 있는 통을 1유로에 팔고 있어 하나 샀다. 순례자 사무소 1층 여행사에서 이틀 후 저녁 때 출발하는 마드리드행 야간 버스를 예약했는데 46.44유로, 신기하게도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까지 타고 온 저가항공이나 비슷한 가격이다.

닭고기와 감자 튀김
깔도 가예고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만나 일행과 마지막으로 점심 식사를했다.


그간 여러번 먹어 익숙한 닭고기+감자요리를 다시 한번. 그리고 그 오른쪽 그릇에 들은 수프는 Caldo Gallego, 깔도 가예고 라고 부르는 갈리시아 음식이다. 감자가 주 재료로서, 흔히 보는 서양 수프처럼 걸죽한게 아니라 한국식 국처럼 되어있는 것이 특이했다. 사진에는 없지만 후식에 아구아르디엔떼는 빠질 수 없다 ^^

아쉬움에 일행과 커피 한 잔 더

헤어지는 아쉬움에 식당에 나와서 다시 근처 카페를 찾아 들어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콤한 케익에 와인을 뿌려 먹고, 커피도 한잔...


자, 이제 산티아고에 도착했으니 각자의 길을 떠날 차례이다.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사진을 찍은 뒤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쉬움속에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꼭 연락하기로 한다.

카미노를 걷는 동안 수염이 가득 자랐다

마리아나는 부모님이 차를 몰고 오후에 산티아고로 오신다. 카미노를 따라 포르투에서 이 곳까지 열흘을 걸어왔지만, 고속도로를 달려 되돌아 가는데는 불과 2시간 남짓하다니 조금은 허무하다. 클라우스와 귄터는 내일 독일로 떠나는 항공권을 미리 예매해 놓았다고 하며, 토마스는 발렌시아에 사는 부인이 내일 비행기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함께 피니스테레에 가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일행과 달리 나는 산티아고가 처음이기에 이틀 밤 지내며 충분히 돌아보고 마드리드로 돌아가기로 했다. 카미노 순례가 끝나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듯, 이제는 삼인방과 다른 숙소를 골라 짐을 풀었다. 숙소는 20유로짜리 낡은 호텔. 귀찮은 마음에 가까운 곳에서 바로 골랐더니 위치는 오브라도이로 광장 바로 앞이라 아주 좋은데 시설은 별로이다.

해질 무렵, 산티아고 대성당 (2008)

이제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 적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동네구경 상점구경도 하고 인터넷 카페에서 갈증(?) 해소도 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네이버 카미노 카페에 산티아고 도착했다는 글을 남기고 한국인을 만나고자 접선시도(?)를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아 실패하고 다음날 결국 혼자 미사에 참석했다. 네이버 카페에 남겼던, 당시의 현장감이 그대로 묻어있는 글을 이 곳에도 옮긴다.

8월4일부터 포르투갈길 (포르투-산티아고)구간을 걷기 시작해서 여기 시간으로 오늘 오전(8월13일)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했습니다.

포르투갈 길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거리는 230킬로미터로 열흘정도면 끝낼 수 있구요, 지금 한참 휴가철임에도 생각보다는 사람이 없네요. 막판 삼일 정도는 알베르게가 거의 꽉차기는 했지만 반 정도 비어있던 알베르게도 많이 있었구요... 한국사람은 커녕 동양사람을 한명도 못봤어요.ㅠㅠ 순례자들이 스페인사람이 다수네요. 영어만 할줄아는 저는 순례자들하고도 말이 안통해서 많이 답답했어요... 스페인어 공부 좀 하고 올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한달넘게 프랑스길 걸으신 분들의 감동에는 비할바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카미노의 한 구간을 이루어 냈다는 생각,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과 어울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마음껏 느꼈다는 생각에 큰 기쁨과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도착은 오전에 했는데 순례자 등록을 오후에 마쳤네요. 그리하여, 순례자 미사는 내일(8월14일, 목) 정오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혹시 이 글 보시는 분 중에 13일 저녁이나 14일 오전에 도착해서 14일 정오 미사 참석하실 분이 계실까 모르겠어요.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서 성당을 등지고 섰을 때 정면 왼쪽 내려가는 방향으로 AVDA. DE RAXOI 라는 골목이 있습니다. 그 골목 들어서자 마자 있는 Cafe/Bar Obradoiro 에서 14일 11:20경부터 11:50분까지 밖에 앉아서 기다릴게요. 턱수염 가득나고 머리 짧은 한국남자가 보이면 제발 아는 척 좀 해주세요. ^^


산티아고 대성당의 야경 (2008)

이어지는 글은, 산티아고에서 보낸 시간과, 순례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들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 포르투갈 길 소개 및 전체 일정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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