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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커피 May 27. 2019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길

2008년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포르투갈 길을 회상하며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제는 11년 전 일이 된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직장을 다니다 잠시 공부를 하게된 내게, 3주간의 방학이란게 주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이미 그 이전인 2007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의 존재를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언감생심 직장인이 한달 휴가를 어찌 낸단 말인가. 지금의 한국 직장 문화에서도 쉽지 않은 휴가 기간이지만 그때는 더욱 불가능한 이야기. 그저 기약없는 언젠가의 여행을 꿈꾸기만 할 뿐,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2008년 갑자기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거다. 인생이란 것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길로 흘러가기도 하고, 이것도 그냥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이 것이 그 분의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나는 내게 기적처럼 주어진 이 방학을, 그 분의 부르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성 야고보, 즉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길에 바치기로 했다.


아무리 방학이 3주라 해도 실제 가용한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방학 중 다른 할 일들을 처리하는 날을 제외하고 항공편을 기준으로 한 기간으로 8월 1일부터 17일까지 총 17일을 확보했지만, 유럽까지의 비행 시간이 만만치 않기에 그 시간 제외하면 실제 현지에서 여행/순례할 시간은 14일 밖에 안 나온다. 그 중 다시 순례길에 들어가고 나가는 일정을 감안하니 총 10일의 도보 순례 기간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기 전 열흘을 걷기 위해서 가장 유명한 800여km짜리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의 마지막 구간 (예를들면 아스토르가에서 산티아고까지) 일부를 걷는 것보다는, 그 길은 나중에 내가 한달 이상 휴가를 낼 수 있는 시점을 위해 남겨두고 이번에는 열흘짜리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은 포르투갈 제2 도시인 포르투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230여km의 포르투갈길(Camino Portugues)!

파란색으로 표시된 것이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는 800여km의 프랑스 길, 녹색은 포르투에서 시작하는 230km 포르투갈 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자료를 찾아나설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접하게 되는 자료는 프랑스 길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 길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나는 포르투갈 길이 프랑스 길과 다른 점에 더 초점을 두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 길 자체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이전에 썼던 '스페인 하숙'으로 유명해 진 산티아고 순례길을 참고해주세요.)

순례길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 되었던 산티아고 대성당, 2008


포르투갈 길의 특징 - 프랑스 길과 비교


짧다.

일단 포르투갈 길은 짧다. 프랑스길이 생장부터 시작할 때 평균 한달이상이 걸리는 반면, 포르투갈 길을 포르투(Porto)에서 시작하면 열흘 내외로 걸린다. 해당 구간의 길이가 230km 정도이며, 나는 정확히 열흘 걸어서 도착했다. 카미노를 걷고자 하지만 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물론 시간 여유가 있다면 포르투보다 더 먼곳에서부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평탄하다.

프랑스 길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만해도 여러개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포르투갈 길을 걸으며 만난 가장 높은 산이 겨우 400m였다. 아무래도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코스이다 보니 높은 산을 만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장점이라면 초보자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반면에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웅장한 자연경관은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순례중 전에 다른 길로도 걸어봤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다른 길들은 산이 많아서 경치가 더 좋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걷는 중 간간히 바다(대서양!)를 볼 수 있었다는 점과 해산물 요리를 많이 먹을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갈리시아의 기후

프랑스 길을 걷고 쓴 책들을 읽어보면 마지막에 산티아고가 속한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며 기후가 바뀐다고들 한다. 뜨겁고 건조한 스페인 내륙에 비해 비가 자주 오고 한낮의 태양도 상대적으로 견딜만한 갈리시아의 특징적인 기후. 포르투갈 길의 절반은 갈리시아에 속하며, 나머지 절반인 포르투갈도 거의 비슷한 기후이다. 다행히 내가 걸었던 여름은 워낙에 비가 안오는 철이라 열흘 중 단 하루만 보슬비가 오고 말았지만 다른 계절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또한 여름 기온이 그다지 높지 않아 이곳의 8월 초가 한국의 9월 날씨 정도로 느껴졌다.


덜 붐빈다.

오래전이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순례자의 90%이상이 프랑스 길을 걸어서 도착하고, 포르투갈 길은 6% 정도밖에 안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순례자도 적고, 그만큼 알베르게도 적다. 열흘동안 세 번은 도착지에 알베르게가 없어서 저렴한 호텔이나 유스호스텔을 이용해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이 구간에도 알베르게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다만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8월 초였음에도 프랑스 길 막판에 흔히 벌어진다는 숙소경쟁은 볼 수 없었다. 만약 봄이나 가을에 이 길을 걸으면 고독을 만끽하게 될 것 같다.


덜 알려져 있다.

출발 전 한국어나 영어로 된 자료 구하기가 힘들었으며, 그래서 그런지 이쪽 순례자들은 이 동네-스페인과 포르투갈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프랑스길에도 스페인 사람이 많겠지만 이쪽만큼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스페인어가 더 절실했다. 내가 할줄 아는 말은 한국말이랑 영어 밖에 없는데, 현지 주민뿐만 아니라 순례자 중에도 영어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 또한 스페인/포르투갈인이 아닌 사람들도 대부분 유럽 사람이었으며, 나를 제외하고는 아시아 사람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어찌보면 홀로 이방인이 된 느낌을 제대로 느껴봤다고 할까?


하지만 여기도 카미노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길도 산티아고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하나이므로 100km이상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순례자 사무소에서 증명서(콤포스텔라)를 발급해 준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담은 배낭을 매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 매일 몇시간씩 걷는 경험, 걸으며 혹은 쉬며 하게 되는 많은 생각들, 각기 다른 생각과 다른 동기로 카미노를 걷기 시작했지만 같은 길을 가는 순례자라는 이유로 금새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곳은 카미노이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날짜별 간략 일정


2008년 8월 1일(금) 서울 - 마드리드

오전에 서울을 출발해서 아에로플로트 항공편으로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늦은 밤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2008년 8월 2일(토) Madrid 시내 구경

마드리드 시내에 머물며 여기저기 둘러봤다. 경비를 절약하느라 좀 궁핍하게 다니기는 했어도 하루 동안 구경은 알차게 했다.


2008년 8월 3일(일) Madrid - Porto

아침에 미리 예약해둔 라이언에어 이용하여 포르투로 건너 갔다. 오후에 포르투 시내 구경을 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카미노고 뭐고 그냥 눌러앉아서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 포르투 대성당에서 순례자 여권 만들고 저녁 때는 기차 역 앞에 있는 어느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드렸다.


2008년 8월 4일(월) [1일] Porto - Rates (37.5km, 실제 걸은 것은 20km 정도) 

아쉬움이 남아 오전에 포르투 시내 구경을 더 하다 오후에 카미노 첫 걸음을 시작했다. 시내에서 부터 걷기 시작하면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넘어가야 하는 죽음의(?) 코스가 있다고 하여, 시내에서 메트로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Vilar Do Pinheiro를 시작점으로 잡았다. 첫 알베르게인 Rates 알베르게에 들어가 이번 카미노를 함께 걸을 아저씨 삼인방을 만나게 되었다.


2008년 8월 5일(화) [2일] Rates - Barcelos (16.4km)

아침에 작년에 카미노 프리미티보를 걸었다는 독일&스페인 아저씨들을 따라나섰는데 중간에 포르투갈 여자분을 만나 일행이 되었다. 여기에 나까지 다섯명이 산티아고까지 계속 함께 걸었지. 이곳은 알베르게가 없어 순례자 할인해주는 호텔을 찾아 일인당 20유로에 묵었다.


2008년 8월 6일(수) [3일] Barcelos - Ponte De Lima (33.6km)

원래 계획상에는 가장 먼 거리를 걷는 날이었다. 열심히 걸어 강을 끼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Ponte De Lima에 도착했다. 역시 알베르게는 없었지만 유스호스텔이 있어 11유로에 저렴하게 묵었다.


2008년 8월 7일(목) [4일] Ponte De Lima - Valenca (36.8km)

포르투갈 길에서 가장 높은 (그래봐야 400m) 산을 하나 넘어주는 날이었다. 원래 계획은 19km 떨어진 Rubiaes에 묵을 예정이었는데 아침에 일찍 출발한 탓에 11시반에 도착해버렸다. 아직 시간도 이르고 심심한 시골 마을에 묵느니 조금만 더 가자는 아저씨들 따라 다시 17.8km 떨어진 Valenca까지 진행했지. 발에 물집도 잡히고 몸 전체적으로 다소 무리가 갔던 하루였다.ㅠㅠ 이날은 알베르게에 묵었다.


2008년 8월 8일(금) [5일] Valenca - Porrino (19.8km)

포르투갈 마지막 도시인 Valenca를 출발, 바로 강 건너에 있는 스페인 국경도시 Tui를 지나 Porrino까지 진행했다. 스페인 땅에 들어서니 포르투갈에 비해 카미노 관리가 더 잘 되어있어 좋았다. Porrino 알베르게는 11시면 불끄고 문을 닫아버리는 곳이라 늦은 저녁 먹고 들어오던 우리는 하마터면 노숙할 뻔 했다.


2008년 8월 9일(토) [6일] Porrino - Redondela (14.2km)

가까운 Redondela 까지만 가서 푹 쉬었다. 거리가 아주 짧아서 오전에 도착했다. 바다가 가까워지며 다시 갈매기 소리가 들려 좋았다. (포르투에서도 갈매기 소리가 참 좋았거든)


2008년 8월 10일(일) [7일] Redondela - Pontevedra (18.2km)

Redondela와 Pontevedra 사이에는 Ria De Vigo(비고만, 바다가 육지 안쪽으로 들어온 그 '만')가 있어 바다를 볼 수 있다. Pontevedra는 시작점인 포르투와 도착점인 산티아고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도시인데, 이 날 컨디션이 영 안좋아서 도시 구경은 거의 안하고 알베르게에서 푹 쉬었다.


2008년 8월 11일(월) [8일] Pontevedra - Caldas De Reis (23.1km)

알베르게가 있는 Briallos가 18.5km 지점에 있었으나 따분한 시골마을을 싫어하는 삼인방을 따라 Caldas De Reis까지 더 갔다. 개인적으로는 시골마을 알베르게에 묵으며 음식을 해먹는 경험도 하고 싶었는데... 알베르게가 없는 Caldas에서는 일인당 17.5유로에 호텔에 묵었다.


2008년 8월 12일(화) [9일] Caldas De Reis - Padron (19.2km)

Padron은 사도 야고보의 시신을 실은 배를 묶었던 돌이 있는 도시이다. 돌아다니다보니 알베르게 강건너편 성당 제대 밑에 그 돌이 있었다. 알베르게 바로 앞 언덕 쪽으로도 근사하게 생긴 성당이 있었는데 여기서 평일미사를 드리는 영광을 누렸다.


2008년 8월 13일(수) [10일] Padron - Santiago De Compostela (23.9km)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 도착이 약간 늦어 정오에 있는 순례자 미사에는 참석 하지 못했다. 점심식사를 마지막으로 카미노 일행과 작별인사를 하고 쉬었다.


2008년 8월 14일(목) Santiago De Compostela

늦잠자고 정오 순례자 미사 참석. 원래 스페인의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 가 볼까도 생각했는데 그냥 산티아고 머물며 푹 쉬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평소에 운동 좀 해두었으면 피니스테레도 갔을텐데... 좀 아쉽긴 하다.) 돌아다니다 낮에 두명, 저녁 때 세명의 한국인 순례자를 마주쳤습니다. 열흘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인... 참 반가웠다.


2008년 8월 15일(금) Santiago De Compostela - Madrid

역시 늦잠자고 푹 쉰 날. 이날은 전날 저녁에 만난 한국인 순례자들을 또 마주쳤을뿐 아니라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도 한국인 순례자를 여럿 만났다. 열흘 이상 한국인을 못보다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 한국말로 실컷 떠드니 좋더군. 밤에는 마드리드행 야간버스를 탔다.


2008년 8월 16일(토) 마드리드 - 서울

아침에 마드리드 남부터미널 도착. 잠시 마드리드 시내를 둘러보고 바로 공항으로 이동. 아에로플로트 항공편으로 모스크바 경유하여 다음 날 서울 도착했다.


2008년 8월 17일(일) 서울

서울 도착.


다음에는 실제 이 길을 걸으면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 글을 추가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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