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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커피 Jun 11. 2019

7. 바닷가 순례길에서 주일미사를 드리다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7일차

2008년 8월 10일(일) [카미노7일] Redondela - Pontevedra (18.2km)


아침 6시경에 일어나 출발했다. 한국의 8월이라면 6시는 해가 반짝 떠오른 시간이지만 이곳은 아직 캄캄하다. 스페인은 유럽 대륙 서쪽 끝에 있으면서도 굳이 동쪽에 있는 프랑스, 독일 등과 같은 표준시를 쓰는 바람에 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지기 때문. 내가 걸은 8월 초 기준으로 7시 넘어서 해가 뜨고 10시가 다 되어야 어두워지니, 한국에서 느끼던 것보다 일출도 일몰도 2시간 정도 느리다고 보면 된다.


오늘의 목적지는 Pontevedra로서 18.2km 거리를 걸어야 한다. 가까운 거리이지만 더 가려고 해도 별로 대안이 없었다. Pontevedra를 지나서는 추가로 18km를 더 가야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Briallos 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길 쪽은 워낙 알베르게가 촘촘히 있어 그때그때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이 있는 반면 이쪽 포르투갈길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 2019년 현재는 Pontevedra와 Briallos 사이에도 공식 알베르게가 있으니 순례길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현행화된 정보를 찾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순례길을 걷다 바다를 만나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다. 전날 Redondela에서부터 갈매기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게 바다가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침에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순례길이 바다를 순간, Ria de Vigo

마치 강처럼 보이는 이 곳은 실은 바다가 깊숙이 들어온 만. 스페인어로 Ria de Vigo, 우리말로 옮기면 비고만 정도 될까. 비고만은 점점 좁아져 카미노 순례길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이렇게 작은 다리로 건널 수 있게 된다.

산티아고가 69.971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

걷던 중 만난 카미노 표지. 약 70km 거리에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다. 오늘을 포함해서 4일만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이다.

어느 포도밭 입구에 서 있던 십자고상

어느 포도밭 입구에 서 있던 십자고상.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걷다 보면 오랜 가톨릭 전통을 가진 나라임을 곳곳에서 알 수 있다.

도시 입구에 있던 Pontevedra 알베르게

이른 시간인 11시에 Pontevedra에 도착했으나 1시에 알베르게 문을 연다. 프랑스 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산한 포르투갈 길이긴 해도 8월 초 극성수기이자 산티아고를 불과 수십km 앞둔 Pontevedra부터는 드디어 말로만 듣던 '알베르게 앞에 가방으로 줄 세우기'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가방이 나 대신 줄을 서 있는 동안, 우리는 건너편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스페인/포르투갈 사람들은 오후 2시경에 점심을 먹는 문화가 있기에 아직 때는 안되었으나, 배가 고팠던 나는 샌드위치(이곳에서는 '보카디요'라 부르는...)를 먹었다.

식당 입구에는 가스통을 연결해서 큰 통에 뭔가를 끓이고 있었는데...
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끓고 있다

식당 입구 커다란 통에 무엇인가를 끓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어! 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끓고 있었다. 문어는 이쪽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이다.


식사 후 일행은 바다를 구경하러 나간다는데 나는 혼자 알베르게에서 쉬었다. 걷다가 마주친, 바다인지 모를 비고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전히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음이 느껴져 푹 쉬고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덕분에 알베르게에 있던 다른 순례자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 점은 좋았다. 순례 둘째 날부터 일행이 되어 쭉 함께한 클라우스, 귄터, 토마스, 마리아나 그룹 외에도 여러 다른 순례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날은 주로 스페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겔, 리요, 실비아, 암파로 등등. 그중 미겔은 키는 훤칠하게 큰데 10대 소년이다. 정확한 나이는 잊었지만 고등학생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와 함께 걷고 있는 중. 문득 집에 두고 온 어린 딸이 생각난다. 나도 나중에 딸을 데리고 같이 도보여행을 할 수 있을까? 십 년, 아니 십오 년 후쯤? 

(*이 글을 브런치에 옮겨 쓰고 있는 시점, 큰 딸은 이제 한국 나이로는 십대가 되었다. 딸과 제주 올레길을 머지않아 같이 걸을 계획을 꿈꾸고 있다.) 


십대 소년 미겔은 호기심이 많았다.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여 많이 얘기해주었다. 아직 어린 친구지만 벌써 3번째 카미노를 걷고 있다고 한다. 암파로는 한국어에 대해 묻더니, 한국 글자로 자기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다고 하여 한글로 암파로 세 글자를 또박또박 써 주었더니 좋아한다. 또한 영국에서 온 어떤 남자 순례자는, 충남 홍성에서 반년간 학원 영어 선생님을 했다고 한다. 간단한 한국말도 몇 마디 하면서 자기는 more Korean than Spanish라나 ㅎㅎㅎ

Pontevedra 시가지. 제법 큰 도시였다.

오늘은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고 첫 번째 일요일이다. 원래 결심은 매일 알베르게에서 가까운 성당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 주일미사라도 제대로 챙겨보고자 알베르게 봉사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친절하게도 근처 성당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려 미사 시간을 알아봐 줬다. 성당 위치와 시간 등을 종합하여 오후 7:30 산프란시스코 성당 미사로 결정.


Pontevedra는 이번 나의 포르투갈길 카미노 여정에서 출발지인 Porto와 도착지 Santiago를 제외하면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였다. 여태껏 한국으로 치면 읍/면 분위기의 마을만 지나쳤는데 이곳은 도시 같은 느낌.

산 프란시스코 성당(Convento de San Francisco)

산 프란시스코 성당(Convento de San Francisco)에서 저녁 미사를 드리는데, 일행 중 가톨릭 신자인 토마스와 마리아나가 함께 해주었다. 물론 두 사람도 주일미사에 정기적으로 나가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구 반 바퀴 돌아 먼 곳에서 찾아온 아시아의 이방인 신자를 위해 기꺼이 나서 주었던 것.


Peregrina('순례자'의 여성형) 성당

미사 드리러 걸어가는 길에 Peregrina('순례자'의 여성형) 성당, 즉, 여자 순례자 성당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순례자에 얽힌 무슨 이야기가 있는 건가 궁금했지만, 일행들이 있어 그냥 패스했다. (그래도 들려볼걸 하는 후회가 한국 와서 들었지만 ㅎㅎㅎ)

Pontevedra에서의 저녁식사

저녁식사는 다시 숙소 앞에서... 점심때 먹었던 바로 그곳이다. 역시 이곳은 바다 근처인지라 지역 특산물인 해산물 몇 가지 시켜 나눠먹었다. 점심때 한참 삶고 있던 그 놈인지는 몰라도 문어가 올라와 맛있게 먹었다.


* 포르투갈 길 소개 및 전체 일정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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