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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커피 Jun 08. 2019

6. 순례길의 절반을 넘어서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6일차

2008년 8월 9일(토) [카미노6일] Porrino - Redondela (14.2km)


총 10일간 걷기로 했는데, 6일차이다. 절반을 넘었다. 슬슬 카미노 순례길을 걷는데 몸이 익숙해져야 하는 타이밍인데, 어째 몸은 점점 지쳐간다. 전전날 내 페이스대로 안 걷고 갑자기 37km를 걸으며 무리한 게 아직도 회복이 안 되는 모양이다.


나뿐만 아니라 동행 중 마리아나도 마찬가지라 처음에 짧은 구간을 목표로 잡았지만, 체력이 넘치는 아저씨 3인방은 아쉬움이 생기는지 일단 가까운 Redondela까지 가보고 괜찮으면 Arcade까지도 가 보자고 했다. 일찌감치 7시에 알베르게를 떠나 첫 카페에서 아침식사로 커피+토스트를 먹고 다시 걷다 보니 11시 반에 Redondela에 도착. 삼인방은 우리 상태를 보더니 음 그래 여기서 멈추자, 다행이다.

Redondela를 향해서 가던 길에서... 산을 넘자 나타나던 마을.
Redondela 알베르게

일찍 도착했는데 알베르게는 1시에 연다. 가게에서 Estrella Galicia 맥주와 땅콩을 사다가 알베르게 앞에 앉아 나누어 먹으며 기다렸다. 낮밤 없이 늘 맥주와 함께하는 일행들, 정말 마음에 든다. ^^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몇 가지 요리를 시켜 나누어 먹고, 개인별로도 하나씩 더 시켜 먹었다. 나는 스페인 음식인 또르띠야(Tortillas)를 먹었는데, 감자와 계란으로 넓적하게 전처럼 부친 음식이다. 다른 식당 메뉴판에서 영어로 Spanish omelet이라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이 음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참고로 멕시코에도 또르띠야가 있는데 그건 계란이 아니라 뭔가 싸 먹기 위한 밀전병이다, 완전히 다른 음식. 


그 외 올리브유에 찍어 먹는 생선요리도 있었고(앤초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빵 위에 생선을 올려 먹는 것도 있었다. 물론 시작은 어제저녁에도 맛 본 에스뜨레야 갈리시아 맥주와 함께, 요리를 먹는 중에는 비노(와인), 다 먹고 나서는 카페(커피)까지, 즐거운 음료(?)의 향연도 빠질 수 없다. ^^ (굳이 억지로 취하기 위해 '먹고 죽자'고 덤비는 음주가 아니라 식사하며 기분 좋게 곁들이는 음료수 같은 음주 문화, 딱 내 스타일이다.) 

앤초비(..가 아닐까 싶은 생선)를 올리브유에 담가 먹었음
생선을 빵에 올린 음식

에스뜨레야 갈리시아를 배경으로, 생선을 빵에 올린 음식. 생선을 빵에 올린다는 것이 낯설었는데, 동행한 유럽인들은 그러려니 하는 게 이렇게 먹기도 하나보다. 하긴 이들은 밥 대신 빵을 먹으니까.

또르띠야(감자가 많이 들어간 스페인식 오믈렛)
마무리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로...

이곳 Redondela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육안으로 바다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포르투에서 많이 듣던 갈매기 소리가 들려와 반갑다. 갈매기 소리가 들리니 내일쯤이면 조개요리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조개는 카미노 순례자의 상징으로서 카미노를 걷는 많은 순례자들이 배낭에 조개껍데기 장식을 매달고 다닌다. 먼 옛날 성 야고보(산티아고)의 시신을 실은 배가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했을 때, 성인의 관에 조개껍데기가 붙어있던 것이 유래라던가? 아저씨 삼인방도 조개껍데기 장식을 매달고 있길래 어디서 샀냐 물었더니, 예전에 산티아고에서 조개 요리를 먹고 나서 그 요리에 쓰인 껍데기를 가져다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오! 그냥 파는 것에 비해 훨씬 의미가 깊어 보인다. 그래서 나도 기념으로 조개껍데기를 간직하고 싶어 조개요리를 먹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기회를 못 만들고, 산티아고 도착해서 상점에서 샀다 ^^)

알베르게의 게시판

오후에 보니 순례자 7,8명이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어서 다른 숙소를 찾고 있더라. 아무래도 8월 성수기이다 보니 스페인 지역에 들어서서부터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다. (물론 프랑스 길에 비해서는 한산하지만...) 내일부터는 우리도 숙소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일이 없도록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듯.


저녁 먹으러 가기 전 카페에 잠시 앉아 맥주 한잔씩 하는데 몸이 별로 안 좋아서 콜라를 마셨다. 일행들은 스페인어로 쑥덕쑥덕하더니 슈퍼에서 장 보아다가 숙소에서 먹기로 결정했단다. 그래서 일인당 5유로에 푸짐하게 한 상 차려 먹었다.


우리 다섯 명의 식단은 다음과 같다: 와인 두 병. 바게뜨 같은데 좀 짧은 빵 여러 개. 치즈 2 덩이, 하몽(햄 종류), 조개 파이, 후식용 달콤한 빵 등등.  한국인인 내게는 신기하게도 슈퍼 한쪽의 치즈 코너에서 마치 정육점 고기 잘라 팔듯이 치즈를 잘라 무게 달아서 팔았다. 하몽도 역시 큰 덩어리를 떼어서 슬라이스로 썰어 주었다. 

알베르게에서 간단히 차려 먹은 저녁 식사

건배하는 순간. 파이와 빵, 치즈, 하몽이 보인다.

치즈와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

치즈와 하몽을 넣고 샌드위치 만들어 와인을 음료 삼아 먹고, 조개가 들어간 파이도 먹는다. 조개가 파이안에? 익숙치 않은 조합이라 신기해하는데 클라우스는 안 먹는다. 원래 자기네 집안은 해산물을 안 먹는다나. 나중에도 해산물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유럽인들을 몇 명 더 만났다. 당연히 누구나 해산물을 먹는 한국에만 살다가 이런 것도 신기한 경험이다. 그리고 디저트는 달콤한 빵과 파인애플로 마무리. 실은 파인애플은 우리가 산건 아니고 알베르게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발렌시아 출신 앙헬이 나눠 줘서 먹었다. 앙헬(스펠이 Angel이다!)은 백발의 중년 아저씨인데 부인과 함께 걷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 날 먹어본 하몽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는 인상적이었다. 만들기 간편하고 별거 들어간 거 없어 보이는데도 참 맛있었기에. 재료 자체가 좋으면 굳이 이런저런 재료 섞어 소스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 이 날 식사를 통해, 나는 이후 해외여행에서도 빵과 치즈가 주식인 지역을 여행할 때는 종종 슈퍼마켓에서 바게뜨(혹은 비슷한 빵), 치즈, 햄 등을 사다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곤 했다. 언제나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카미노가 내게 준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 포르투갈 길 소개 및 전체 일정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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