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 커피 Jun 04. 2019

4. 포르투갈의 마지막 도시에 도착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4일차

2008년 8월 7일(목) [카미노4일] Ponte de Lima - Valenca (36.8km)


포르투갈 길, 포르투-산티아고 구간에서 가장 높은(약 400m) 산을 하나 넘어주는 날. 원래 계획은 19km 떨어진 Rubiaes에 묵을 예정이었는데, 예상외로 17.8km를 추가로 걸어 Valenca까지 가게되어, 총 36.8km를 걸은 날이었다.

Ponte de Lima를 출발하고 얼마 안 돼서. 강에 비치는 숲과 구름이 아름답다

오늘도 같은 일행(아저씨 삼인방+마리아나)과 함께 카미노를 시작한다.


유스호스텔에서 주는 커피와 빵을 먹고 출발하여 걷는 중간에 카페에 들려 커피를 한잔 더 마셨다. 어떤 날은 점심식사 혹은 저녁식사 시간에도 커피를 마신다. 즉, 내 일행들에게 하루 커피 3잔 정도는 기본이고 4잔 이상 마시는 날도 흔히 있는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 혹은 카페라테 (포르투갈 말로는 카페콩라잇). 한국에서는 꽤나 커피 즐겨 마시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유럽인들과 어울려 유럽 스타일로 커피를 마셔댔더니 다량의 카페인이 위에 무리가 가는 날도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딱 19km만 걸으면 되는 날. 중간에 포르투갈길 포르투-산티아고 구간에서 가장 높은 산을 넘는데 그 산의 높이가 해발 400m란다. 서울에 있는 관악산보다도 낮은 산이라 생각하니 크게 두렵지는 않다.

지나가다 보게 된 예쁜 산속 마을
쭉 뻗은 고속도로와 그 밑으로 들어가는 순례길

고속도로 옆을 지나며 든 생각: 저 고속도로를 차로 달리면 두시간도 못되어 산티아고에 도착할텐데...

포르투갈 길 포르투-산티아고 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 해발 400m 산을 넘는 중.
Rubiaes 알베르게를 알리는 표지

정오도 채 되지않은 11시 반에 Rubiaes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중간에 지난 해발 400m짜리 산길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새로 지은 듯 깔끔하게 생긴 알베르게에 들어가 쉬려고 생각하는데, 같이 걸어온 일행이 스페인어로 두런두런 (우리 다국적 팀의 주요언어가 스페인어이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이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오늘 하루 시간이 많이 남으니, Rubiaes 처럼 따분한 시골에 있지 말고 17km 더 가서 Valenca에 묵자는 아저씨 삼인방의 이야기이다. 이미 두번째 카미노를 걷는 그들의 페이스를 마냥 따라도 될지 조금 망설여졌지만, 나처럼 처음 카미노를 걷는 마리아나도 함께 가겠다는 말에 그래 좋다, 나도 따라 나섰다.


바로 이 순간, Rubiaes를 지나쳐 Valenca (c 밑에 꼬리가 달려있어 발렌사라 읽음)까지 가기로 한 것은 이번 카미노에서 후회되는 선택 중 하나이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이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들과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Rubiaes에 그냥 남았을 것 같다. 이 선택으로 인해 이날 하루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컨디션이 급속이 안 좋아져 이후 이삼일 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클라우스가 마리아나의 가방을 대신 매기 시작한 성당

Valenca까지 가는 길에는 산이 하나 더 있었고, 전날 이미 30km 넘게 걸은 초보 순례자가 걷기에는 쉬운 구간이 아니었다. 결국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발에 물집도 잡혔고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실은 나보다도 더 안 좋았던 것은 마리아나. Rubiaes와 Valenca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마리아나가 퍼졌다. 처음에는 일행 중 가장 키크고 체력이 좋은 (더불어 가장 나이가 많기도 한!) 클라우스가 대신 가방을 들어주었으나 그래도 힘들어 해서 대략 10km여 정도 남겨놓고 결국 마리아나를 택시에 태워 Valenca 알베르게로 보냈다.

산을 넘어 Valenca를 향하는 길
체력 만빵 아저씨 삼인방을 먼저 보내고 자리에 주저앉아 이 사진을 찍었다.

마리아나를 택시 태워 보내고 다시 출발. 그러나 Valenca를 코 앞에 두고 (약 4km 정도) 결국 나도 체력이 고갈되어 일행과 멀어져 뒤쳐졌다. 


그렇게 뒤쳐져 혼자 걷다보니 다시 길을 잃는 사태가 벌어져 알베르게를 못찾고 지나쳐 버렸다. 걷고 걸으며 왜 알베르게가 안나오나 궁금해 했는데, 결국에 눈 앞에 펼쳐지는 건 포르투갈의 끝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과 국경을 건너는 철교였다. (으악) 국경도시인 Valenca를 모두 가로질러 진짜 스페인 국경까지 와 버린 것이다. 하필 혼자 뒤떨어져 일행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지... 몸도 지친데다가 머리 속까지 아찔 했으나 서둘러 정신을 수습하고 온 길로 되짚어 갔다. Turismo office(여행자 안내소)에 들려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보고 지도와 실제 풍경을 열심히 맞추며 찾아보았다. 결국 순례길에서 약간 벗어나 옛날 성곽 근처에 서있는 알베르게를 발견한 것은 오후 5시 가까운 시간. 아, 반갑다 알베르게!

포르투갈 마지막 알베르게인 Valenca 알베르게

어서 들어가 쭉 뻗어 쉬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알베르게는 오후 6시에 문을 연다는 공지. 주변 가게에 앉아 음료수 마시며 기다렸다. 6시가 조금 못되어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안에서 누가 문을 열어주는데,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어떤 포르투갈인 순례자였다. 잠시 이야기 해 보니 열살 좀 안 되어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이 길을 걷는 아버지였다. 나도 나중에는 우리 아이를 데리고 도보순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직 먼 얘기였지만. 


알베르게에서 결국 아까의 일행도 다시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는 Bife a casa c/ batata frita. 영어로 말하자면 'Beef steak of the house with fried potato'가 되겠다. 계란 후라이와 피망을 올린 밥도 함께 준다. 오늘은 길고 힘든 하루를 보내며 점심도 굶었으니, 든든하게 스테이크로 체력 보충을 하자! 물론 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에 와인은 여간해서는 빠지지 않는다.  

긴 하루를 보내고 스테이크로 체력 보충
자기 음식도 찍으라고 접시를 들어주는 친절한 마리아나씨


* 포르투갈 길 소개 및 전체 일정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이전 05화 3. 전날보다 두 배로 걸은 보상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