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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커피 Jun 03. 2019

3. 전날보다 두 배로 걸은 보상은...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3일차

2008년 8월 6일(수)[카미노3일] Barcelos - Ponte de Lima(33.6km)


포르투갈길, 카미노 포르투게스의 셋째 날. 처음으로 33.6km라는 긴 거리를 걷기 위해 전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 6시 반에 뿌연 안갯속을 걷기 시작했다. 그제 만난 중년 삼인방에 어제 만난 마리아나, 그리고 나까지 총 다섯 명이 같이 움직였다. 


카미노를 모두가 같은 일정대로 걸을 필요는 없지만, 알베르게가 띄엄띄엄 있는 포르투갈 길에서는 숙소 때문에라도 다들 얼추 비슷하게 걸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한 보편적인 일정에 따르면 오늘 걷는 길이 가장 긴 구간이다. 어제 걸은 길의 두 배가 넘는 거리라 긴장이 된다. 물집은 잡히지 않을지, 내 고질병인 무릎 연골 부상이 재발하지는 않을지 신경이 많이 쓰인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무 이상 없이 걸어왔다.


걷다가 만난 첫 카페에서 어제와 같이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했다.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는 스페인이지만 지금 나는 포르투갈 땅 위에 있으니, 포르투갈인인 마리아나에게 포르투갈어 단어를 몇 개 물어보았다. 우유 넣은 커피는 카페콩라잇(cafe com leite), 토스트는 토가다(torrada). 스페인어(cafe con leche, toastada)와 다르지만 영 다르지는 않다. 하긴, 스페인어만 아는 중년 삼인방도 대충 포르투갈에서 서바이벌 포르투갈어로 의사소통하는 것 보면. 서울말과 경상도 말보다는 멀고, 한국말과 일본 말보다는 훨씬 가까운 정도로 추정된다.

Barcelos를 떠나가다 만난 작은 성당, 그리고 순례길 표지판

걷다 보니 전날 걷다 지나쳤던 다른 순례자들을 또 마주치게 된다. 아직 이름도 국적도 모르지만 동료 순례자를 만나면 반갑게 "올라(Ola)"를 외쳐준다 - 다행히 이 인사말은 포르투갈, 스페인 공통이다. 


첫날 혼자 걸을 때는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오 분에서 십 분 정도 쉬었는데, 이미 두 번째 카미노를 걷는 삼인방은 두세 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한 번에 걷는 스타일이다. 나도 별 수 없이 그 패턴을 따라 걷다 보니 다소 힘들긴 해도 일정한 페이스를 지키며 걷는 것 같아 좋다. 보통은 키가 가장 큰 클라우스가 성큼성큼 선두에서 걸으며 길을 찾는다. 가끔 화살표를 잃어 길을 되돌아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 혼자 길을 찾을 때보다는 훨씬 마음이 놓인다.  

Barcelos에서 Ponte de Lima로 가는 중간에 쉬었던 카페
내가 모두 마신 건 아닌데 사진 찍는 거 보더니 내 앞에 몰아주기를 한다 ㅋㅋ

나는 오랜만에 와보는, 그리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유럽의 모든 것이 신기하여 음료고 음식이고 다 찍어대는데, 유럽인 길동무들은 내 모습이 신기한지 깔깔댄다. 몇 번 보더니 내가 카메라를 꺼내면 아예 음료 잔을 내 앞에 몰아주기를 한다 ㅋㅋㅋㅋ 고마워 친구들. 근데 그대들도 만약 어느 날 동아시아에 뚝 떨어져 낯선 음료와 음식을 접하면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고!   

포도밭을 배경으로. 이렇게 열심히 키워서 와인으로 만들겠지?
한적한 시골길, 로마시대 성당 앞에서 쉬어가는 일행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인물 사진을 추가했으나,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ㅋ


카미노 포르투게스에는 바닥이 돌로 된 길이 무척 많다. 자갈이 굴러다니는 길이 아니고, 큼직큼직한 돌을 박아놓은 일종의 포장도로라고 하면 되겠다. 흙바닥과 달리 딱딱해서 오래 걷기는 좀 안 좋다. 그 길을 따라 양 옆으로 펼쳐지는 농촌 풍경은 옥수수밭 아니면 포도밭이 대부분이었다. 옥수수밭과 포도밭이 지겨워질 때쯤에는 야트막한 산이 나타나서 잠시 숲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드디어 도착한 목적지 Ponte de Lima, 멋진 가로수 길이 우리를 반겨 준다.
아름다웠던 Ponte de Lima의 모습

점심도 안 먹고 9시간 가까이 걸어 오후 세시 반에 Ponte de Lima에 도착했다. 긴 거리를 걷느라 힘이 들었지만 강을 끼고 자리 잡은 Ponte de Lima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힘들었던 하루가 충분히 보상되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놓인 근사한 중세시대 다리, 그리고 강변의 성당.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고 싶었던 풍경. 흥미로운 것은, 이곳까지 오며 눈대중으로 볼 때 Ponte는 '다리'라는 뜻인데, 도시 이름이 Ponte de Lima라는 것은 그냥 '리마 강의 다리'인 거다. 그만큼 저 중세 다리가 이 도시의 상징인 것이겠지? 


Ponte de Lima에는 알베르게가 없지만, 카미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스호스텔이 있어 저렴하게 묵어갈 수 있었다. 일인당 11유로에 시설 깔끔하고 아침식사도 제공되니 알베르게가 없어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 2019년 현재는 이 곳에도 알베르게가 있다.)

늦은 점심은 맥주와 마르게리따 피자

지치고 배고팠다. 짐 풀고 나와 피짜리아(피자 가게)에 앉아 마르게리따를 시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그렇지만 전 세계 어디든 이탈리아 음식점이 없는 곳은 없는 듯하다. 사진의 혼자 먹을 수 있는 크기의 피자가 5유로 정도. 물론 맥주도 빠질 수 없다. 지금까지 매일(!) 마시던 Super Bock이 아닌 Sagres가 보인다. 이것 역시 포르투갈 맥주인 듯. 지역마다 다른 맥주를 마셔보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길을 알리는 표지석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유스호스텔 앞 길(Rua) 이름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길'이다. 혹시 뭔가 사연이 있는 걸까, 교황님이 카미노를 찾아와 이 유스호스텔에 들리기라도 하였을까?

포르투갈 국기가 나부끼는 어느 골목길의 밤
저녁식사. 크로켓, 바칼라우, 문어.

방으로 돌아와 얼마간 낮잠을 즐기고 일어나니 어두운 밤이다. 좀 늦긴 했지만 체력 유지를 위해서는 굶고 잘 수는 없다. 다시 밖에 나가 저녁거리를 찾는다. 일행이 주문한 저녁은 닭고기 크로켓(Croquetes), 바칼라우(Bacalhau) 튀김, 문어(Polvo) 요리. 이렇게 시켜서 다 같이 나누어 먹었다. 이들도 때로는 이렇게 나눠 먹기도 하는구나. 아마 국물이 없어 깔끔하게 가져갈 수 있는 음식이니까 그렇겠지. 


매일매일 낯선 음식 속에 살다가 제법 익숙한 크로켓을 보고 반가웠다, 이름도 맛도 고로케였거든. 크로켓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로케가 되어 한국에 들어왔지 싶다. 바칼라우는 이 지방에서 많이 먹는 생선의 이름이고, 문어도 이 지방에서 많이 먹는 요리라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 길의 특징 중 하나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을 계속 걷게 되므로 이렇게 해산물 요리를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 분명 먹기는 간단하게 먹었는데 식사비는 엄청 나왔다. 해산물 요리가 비싼 음식인가? 와인이 비쌌나? 까막눈인 나는 유럽인 동료들이 알아서 잘 시켰겠지 하고 믿는다!


* 포르투갈 길 소개 및 전체 일정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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