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 커피 Jun 30. 2019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순례길을 마치고 그 의미 정리하기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서울까지


지난번 이야기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산티아고를 출발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야기 먼저 하자면, 야간 버스를 타고 9시간을 달려 마드리드 남부 버스 터미널에 오전 6:30에 도착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서너 시간 여유가 있었다. 버스 안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자 나른한 상태로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부인 Sol역에 내려 왕궁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쉬었다. 주변에 노숙자가 조금 있었지만 왕궁 앞이라고 경찰차 한 대와 경관 네 명이 지켜주고 있어 든든했다.


잠시 후 다시 기운 내서 일어나 보았으나,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상점 연 곳도 없고 도무지 할 것이 없었다. 에스파냐 광장까지 목적 없이 마냥 걷다가 주머니에 돈도 있는데 너무 궁상인 것 같아 2유로에 아침식사 주는 카페에서 카페콘레체에 추로스를 먹으며 시간을 좀 보냈다.

카페콘레체와 츄로스

딱 2주 만에 다시 만나는 마드리드. 낯익은 골목과 광장들, 이제 안녕이다. 아마 나중에 스페인 남부나 포르투갈 여행을 하면서 들릴 수도 있겠지. 또 다른 카미노도 좋고. 하지만 다음에는 나 혼자는 아니었으면 한다. 힘이 더 들더라도, 돈이 더 들더라도, 꼭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


그렇게 오고 싶어 한 카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남들이 주로 가는 800km짜리 프랑스길은 아니지만 주어진 시간에 맞게 200km짜리 포르투갈길을 택하여 무사히 마쳤다. 나는 이 순례길을 통해 무엇을 얻은 것일까?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뭐 겨우 열흘 걸어서 그런 거 깨달을 것 같으면 아무나 다 알 수 있겠지?

마드리드에서 한국으로 나를 싣고 돌아갈 아에로플로트 항공기

그래서 순례를 마치고 나서 남는 시간에, 들고 다니던 수첩에 나름의 득실을 정리해 본 것을 옮겨 본다.


무엇을 얻었는가?

- 도장이 가득 찍힌 크레덴시알 (순례자 여권)

- 콤포스텔라 (순례 증명서)

- 230km를 두 발로 걸었다는 자신감

- 포르투갈, 스페인의 자연, 문화, 생활에 대한 약간의 이해- 특히 유럽인의 식생활을 함께 함

-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두 번의 순례자 미사와, 다른 성당에서 두 번의 주일 미사, 한 번의 평일 미사 경험

- 외국인 순례자들과의 즐거운 추억들

-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

- 다음 여행에 대한 아이디어들 (포르투갈은 언젠가 다시 꼭!)

-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다는 것


무엇을 잃었는가?

- 돈. 카미노 및 관광을 위해 현지에서 550유로 정도, 항공권으로 97만 원 비용 지출.

- 2주 남짓한 방학기간, 그 기간을 아내와 딸과 같이하지 못했다는 것

- 전반적인 건강은 좋아졌겠지만 많이 걸어서 그런지 왼쪽 발바닥이 약간 불편한 채로 귀국

- 체중, 특히 지방 위주로 2kg를 카미노에 두고 왔음. 따지자면 100km 당 1kg씩 감량? ^^


득실을 따져서 어느 쪽이 더 큰가 비교해 보고자 하는 의미는 아니다. 얻은 것이든 잃은 것이든, 순례길을 걸으며 겪은 것들은 모두 소중한 경험이자 추억인 것을. 그런 의미에서 잃은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얻은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순례 증명서와 순례자 여권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소개하고 마칠까 한다.


순례 증명서(콤포스텔라). 산티아고까지의 마지막 100km 구간을 걸었다는 것이 확인되면 발급해 준다. (자전거로는 200km 이상). 나처럼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으면 200km가 넘기 때문에 당연히 받을 수 있고, 포르투갈길 중 스페인 첫 도시인 Tui에서 시작하면 100km를 간신히 넘으니 자격이 된다. 증명서에 뭐라고 글자가 많이 쓰여있는데 날짜와 내 이름 말고는 그다지 알아먹는 내용이 없다는 게 문제네.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 도장은 알베르게, 성당, 카페 등에서 받은 것. 꼼꼼히 받은 도장으로 내가 이 길을 진짜 걸었음을 증명해야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제일 마지막에는 산티아고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 순례자에게 받은 개인 도장이. 저 도장 받은 후에야 '와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미리 생각해서 도장 하나 만들어 갔으면 길에서 만나는 다른 순례자들과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이 글을 보고 떠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길)


나의 카미노,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 며칠간을 보냈던, 마드리드에서와 포르투에서의 여행기는 나중에(언젠가) 또 올리고자 한다.


지금까지 나의 (조금은 오래된) 순례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포르투갈 길 소개 및 전체 일정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이전 13화 순례길 끝나고 산티아고에서 했던 일 열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