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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커피 May 24. 2019

'스페인 하숙'으로 유명해 진 산티아고 순례길

최근의 인기 TV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길을 걸으면서는 물론, 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길이다. 최근 TV 프로그램을 통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이 길의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글을 써본다.


'스페인 하숙'으로 더 알려지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

최근 "스페인 하숙"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나는 본 적이 없지만, 차승원, 유해진 등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인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방문하는 순례자들에게 국적불문 푸짐한 한식을 차려주는 것을 주제로. 그간 “외국인에게 한식을 먹여 한국을 알리자”는 소재의 프로그램이 몇 개 있었던 걸로 아는데 난 음식문화가 굳이 그렇게 알린다고 알려지는 것일까 싶어서 크게 관심은 안 갔으나, 그래도 이번 스페인 하숙은 내가 십 몇 년 전 걸었던 '그 길'이 나온다는 점에서 흥미가 생긴다. 조만간 다시보기를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외국인에게 한국을 알리기도 했겠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지인들도 여럿 있었다.

순례길의 종착지, 산티아고 대성당, 2008년


그 길의 유래: 사도 야고보를 찾아가는 성지순례길

여기 나오는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며, 스페인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고 한다. 이는 스페인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걷는 순례자의 길로서, 종착지인 산티아고의 대성당에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명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어 표기이다. 전설에 따르면 야고보는 이스라엘을 떠나 머나먼 이베리아 반도, 즉 현재의 스페인 지역에서 선교를 하며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처형됨으로서 순교자가 되었고, 시신은 다시 그가 활동하던 스페인에 묻혔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이베리아 반도 많은 지역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인에게 점령되어 지배를 받던 시절, 스페인이 국토 회복을  펼쳐나가던 시기에 다시 조명되었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사도 야고보가 전쟁터의 스페인군 앞에 홀연히 나타나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를 계기로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걷는 성지순례길이 생기게 되어 중세에도 걸어서 혹은 말을 타고 등등 여러 방법으로 순례를 하였다고 한다. 종교의 힘이 약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순례자가 많이 줄어들었으나, 1980년대 이후로 유럽 내에서도 복원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로도 유명해지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회사원이었던 파울로 코엘료는 이 길을 걷고 깨달음을 얻어 소설가로 전향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보길인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제주올레길 이사장 역시,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감동하여 자신의 고향인 제주에 도보 여행길을 개척한 것이라고 한다. 제주 올레길을 만들게 된 흥미진진한 사연은 이 책에 잘 쓰여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걷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정비된 최고의 도보 여행길

원래는 자기집 앞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것이었으나, 점점 유명한 길들과 시작 포인트 들이 생기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길은 프랑스-스페인 국경의 프랑스 마을 생장피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는 800km 가량의 '프랑스 길'이며, 사람마다 다르지만 건강한 사람 기준으로 평균 30~40일이 걸린다.


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급적 차량용 큰 도로보다는 사람이 걷기 좋은 길로 연결이 되어 있으며, 중간 중간 길을 잃지 않도록 순례길의 상징인 조가비 모양의 표시, 혹은 노란색 화살표로 산티아고로 향하는 방향을 알려준다. 또한 순례길 상에 혹은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 숙소(알베르게)가 종종 있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날 바로 걷기 시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쉽게 말해, 다른 위험과 불편을 줄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걷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정비된 길인 것이다. 길을 걸으며 순례자용 여권에 마을의 성당이나 알베르게 등에서 도장을 꾸준히 받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는 그 도장을 검토하여 완주했음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준다. 증명을 받기 위한 최소 조건은, 산티아고에 이르는 마지막 100km를 걷는 것이다. 그래서 산티아고를 100km 남짓 앞둔 지점부터 순례자가 크게 늘어난다. (프랑스 길의 경우는 사리아(Sarria)가 그 포인트)


방학을 맞은 대학생이거나, 직장을 그만둔 은퇴자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800km 풀코스에 도전이 가능하겠지만 (실제 그래서 현지에서 걷는 사람도 20대와 5,60대가 제일 많다), 대개의 한국인은 바쁘게 살아가느라 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2-3주 정도의 휴가를 활용하여 일부 코스를 걷고 오는 경우도 흔하며, 나 역시 15일의 휴가가 주어진 어느 해, 200km 남짓한 구간으로 이 길을 걷고 올 기회가 있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이어 보도록 하겠다.


순례자의 그림자, 2008년 포르투갈 포르투 근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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