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독서] 박성희 '집의 일기'를 읽고

by 뚜우

매일 나를 위한 1시간, 그 첫 날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역시 독서가 좋겠다 싶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항상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괜스레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댈 수 없게 되었으니 다시 책과 가까이 지내는 일만 남았다.


읽을 책을 마련하기 위해 무척 오랜만에 동네 구립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서고 여기저기를 살피며 보물찾기하듯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내가 도저히 빌리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의 책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집을 짓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집 한 채 지으면 10년을 늙는다고 하는데 남의 집 짓기 이야기에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고 하니, 내 꿈이 바로 '내 집 짓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덥석 고른 박성희 작가의 '집의 일기'는 일흔이 되어 아파트를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집을 지어 노후를 보내는 저자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그렇게 맘에 꼭 드는 창 하나를 갖고 싶은거다.

- 박성희, '집의 일기' 중-


맘에 꼭 드는 창 하나가 갖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내 마음에 유달리 깊게 와 닿았다. 내 마음에 드는 창이 있는 집. 그 얼마나 내가 바라고 바라는 일이던가.


불을 피우고 방을 데우고 간소한 저녁을 짓는다.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담백한 손두부 몇 점을 담고 생선도 구웠다.

어둠 덮인 뜰에는 눈이 내린다.

차 한 잔, 음악과 함께 하루가 저문다.

-박성희, '집의 일기 중'-


이 대목을 여러번 읽고, 또 읽었다.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삶이 활자가 되어 고스란히 책 위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내가 지은 집에서 저런 꿈의 저녁을 보내는 나의 모습을.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달뜨다가 너무나 아득한 미래의 일인 것만 같은 생각에 이내 마음이 미지근하게 식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 저자가.


나는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얼마전 넷플릭스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유난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장면이 있었다. 마지막회 엔딩에서 소녀 애순과 소년 관식이 노란 유채꽃 들판에서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나는 나중에 시인 되면 엄앵란이 같은 투피스 사 입을거야. 그리고 부자되면 이층집 양옥집에다가 뽀삐같은 강아지도 키울거야."

"나는 지프차 탈거야. 리이방도 낄거야. ... 너랑 그거 타고 천지사방 다 놀러 다닐거야. 미국도 갈거야."

"좋아! 도란도란 가면서 다 하면 되지. 우리 사는 내내 진짜 별거, 별거 다 하자. 하고 싶은거 막 다 하자."


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저것들 중 대부분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내 꿈을 끝끝내 이루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데서 비롯된 걱정과 슬픔 때문이다. 우리 엄마와 아빠도 나만큼 젊었던 시절에 꿈이 있었다. 내가 여덟살, 그러니 엄마와 아빠는 고작 서른 셋쯤 되었을 무렵, 그들은 삼겹살 살 돈도 없어 그 보다 더 싼 오리로스(그때는 그랬다.)를 부루스타 위 불판에 얹으며 그들의 꿈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엄마랑 아빠는 말이야,

너희 다 크고나면 캠핑카 하나 사서

전국, 아니 세계일주 다니는 게 꿈이야."


내가 서른이 되어서도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을 보니 참 자주도 이야기 했더랬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다 큰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도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들은 꿈을 이루는 대신 삶에 치여 이혼을 했고, 이후 아빠는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엄마도 그 때의 꿈과 먼, 하루 하루 밀려드는 현실을 여전히 살아내고 있다.


애순과 관식도, 나의 엄마와 아빠도,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일흔에라도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나와 남편도 애순과 관식처럼, 나의 엄마와 아빠처럼, 손 붙잡고 공원을 거닐며 우리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손을 뻗으면 당장이라도 잡힐 듯 자세하고, 생생하게.


"나는 나중에 우리 집 지으면 그 옆에 텃밭도 만들거야. 거기다가 채소랑 허브 심어서 때마다 따서 먹고, 아! 고추는 꼭 심을 거야. 고추 심어서 빨갛게 되면 따다 곱게 말려서 방앗간 가서 고춧가루로 만들어서 그걸로 요리 만들어 먹을거야. 내가 쓸 고춧가루 내가 만들어 먹는 게 내 소원이야."

"나는 집 지으면 막 50평으로 넓게 지어서 자기한테 엄청 넓은 주방을 만들어줄거야. 그리고 햇볕 좋은 날이면 넓은 바닥에 누워서 하루종일 낮잠도 자고 뒹굴뒹굴 거릴거야."


우리의 대화가 애순과 관식의 대화와 오버랩된다. 너무나 해맑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애순, 관식과, 마찬가지인 나와 남편. 우리는 과연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내 주변에는 아직 꿈을 이룬 이가 없지만 그래도 저자는 꿈을 결국 이뤘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 내 주변에 없다면 내가 꿈을 이룬 첫 번째 사람이 되면 될 일 아닌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생생하게 꿈꾸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오늘도 역시 꿈을 꾼다. 우리가 지은 집에서 된장찌개 끓여 도란도란 밥상을 차리는 나와 남편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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