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등산]
평소보다 무척이나 일찍 눈이 떠진 날이었다. 단지 일찍 일어났을 뿐인데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공짜로 더 얻은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에 이 시간을 어떤 일을 하며 보낼지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한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둔 일 중에서 비교적 시간과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 일인 '등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바다와 산, 둘 중 평생 한 군데서만 살 수 있다면 아마 고민도 하지 않고 산을 선택할 것이다.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매일 가도 질릴 틈이 없는 산. 산을 그렇게 좋아해도 등산은 자주 가기가 어렵다. 기본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데 많은 체력을 소모하기도 하고 등산은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취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체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취미기에 자주 즐기지 못한 취미였지만 이렇게 아침 일찍 눈이 떠졌으니 이 좋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 변덕스러운 내가 귀찮다는 생각을 시작하기 전에 얼른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푸릇한 봄의 새벽에 등산로 입구에 서니 아침에만 맡을 수 있는 신선한 아침 공기가 내 폐를 가득 채운다. 혹시 새벽의 냄새를 알고 있는가? 그 유난히 새벽에 일어나야지만 맡을 수 있는 새벽의 냄새가 있다. 촉촉한 흙의 냄새와 다른 때보다 훨씬 산소농도가 높을 것만 같은 신선한 공기의 조합. 그게 코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행복이 내 몸에 진하게 퍼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등산로 입구에만 서 있는 건데도 벌써 행복 가득이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 올챙이들을 발견했다. 어릴 때 시골 비슷한 곳에서 자라서 늘 자연에 관심이 많다. 봄에 등산을 하다가 개울가를 마주하면 혹시 올챙이나 도롱뇽이 있는지 꼭 유심히 찾아보는 게 습관이다. 그러다 이렇게 올챙이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가 어릴 때는 문방구에서 진짜 개구리알을 팔기도 했는데 하루는 호기심에 그걸 사다가 몇 달동안 열심히 키워서 결국 개구리까지 만들어냈더랬다. 그때 내가 키운 올챙이는 사이즈가 무척 작았는데 이날 산에서 본 올챙이는 내가 키웠던 올챙이보다 네 곱절은 더 큰 친구들이었다. 각각 어느 개구리의 올챙이일까 궁금해진 마음을 안고 본격적으로 산에 올랐다.
향긋한 피톤치드에 둘러싸여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갔다. 요즘 통 운동을 하지 못했던 터라 아주 저질체력이 되었을 거라 확신하며, 절대 무리하지 말고 갈 수 있는 만큼의 거리만 갔다가 돌아와야겠다 다짐을 하고 시작한 등산이었는데 생각보다 할만해서 조금 놀랐다. 예전에 시간이 많아 더 자주 등산을 다녔던 때보다도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라 쉬지도 않고 한 발자국씩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요즘 혈당 스파이크 방지로 점심 먹고 10분씩 간단한 걷기 홈트를 하고 있는데 고작 그거 했다고 체력이 는 건지 의아해하면서도 몸이 가뿐하니 등산할 맛이 나서 점점 신이 났다.
한 지역에 오랜 시간 살아온 내게는 몹시 익숙한 동네 산이지만 익숙한 동시에 내가 몹시 애정하는 산이기도 하다. 오래 다녀서 길도 훤히 다 알고 있는 데다 산은 사계절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니 정말 질릴 틈도 주지 않고 내게서 늘 감탄만을 자아낸다. 봄에는 연둣빛 새순들이 햇빛에 비쳐 반짝반짝 빛나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그늘을 만들어 바람만 불어도 시원하다. 가을에는 형형색색 낙엽이 지는 것도 몹시 멋진 볼거리지만 이 산에는 특히 밤나무가 많아서 등산하다 말고 밤송이를 벌려 밤을 두어 개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겨울의 산은 어딘가 쓸쓸하긴 하지만 그 쓸쓸한 숲의 모습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이렇게 내게 주기만 하는 산에게 나는 따로 해줄 것이 없어 조금 미안할 때도 있다. 그냥 산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흔적 없이 조용히 다녀가는 것이 내가 산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다.
부지런히 산을 올라 중간 쉼터에서 잠깐 쉬며 물을 마셨다. 원래 중간 쉼터까지만 다녀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정상까지 도전해 볼 만한 체력이 아직 남아있어서 오랜만에 산에 온 김에 갈 수 있는 만큼은 가보자는 뜻으로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10분여쯤 더 산을 올랐을 때 등산을 시작할 때부터 걱정했던 풍경을 결국 실제로 마주하고 말았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동네산은 사실 얼마 전 국가동원령까지 내려질 정도로 크게 산불이 났던 산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마주할 수도 있겠다고 예상한 풍경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마주하고 서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산 입구에서 감탄했던 신선한 공기는 타버린 숲에서 풍기는 탄내 때문에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바짝 말라버린 나무와 이파리들이었다.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모두 버텨내고 봄이 왔다는 설렘에 겨우내 저장했던 영양분들을 모두 모아 하나하나 정성 들여 피워낸 이파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피워낸 이파리들이 뜨거운 불길에 모두 말라 갈색으로 축 쳐져버렸으니 나무는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어 내 마음도 무척이나 쓰렸다.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며 괜히 말라버린 이파리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쓰다듬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불이 할퀴고 간 흔적이 더욱 진해졌다. 이 길은 나무가 완전히 다 타버려서 조금 스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등산로는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탄내가 너무나 자욱해 숨을 쉬기가 불편해서 아쉽지만 이쯤 하고 하산을 하기로 했다. 한창 푸릇해야 할 시기에 시커멓게 다 타버린 모습을 보고 있으니 타버린 나무들에 감정이입이 되어 내 기분까지 살짝 울적해지려는 찰나, 그 까만 재 속에서도 희망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발견했다.
다 타버린 땅에서도 어김없이 희망의 새 생명은 돋아나고 있었다. 새순을 보고 어찌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던지! 등산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인생의 교훈들을 얻게 된다. 이날도 이 새순을 통해 교훈을 하나 얻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그 속에서 언제나 작은 희망이 싹튼다는 것. 그럼에도 새 생명은 움튼다는 것. 그러니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한번 더 힘을 내보자는 것.
남편과 함께 우리의 사업을 시작하기 전후로 정말 숱한 어려움들이 있었다.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서 똑 죽겠는 때도 있었고,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아 그냥 바닥에 엎어져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럴 때마다 늘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이제 다 끝나버렸다고 생각한 순간마다 늘 작은 희망이 하나씩 내 앞에 툭 나타났다. 그 희망을 씨앗 삼아 부지런히 키우다 보면 또 숨 쉴 틈이 생겼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늘 그렇게 끝남 없이 흘러왔다. 앞으로도 힘든 일들은 또 생길 것이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재 속에서 피어난 새순을 생각하자. 판도라의 상자 속 작은 희망 한 조각처럼 언제나 우리 인생에도 작은 희망 한 조각씩은 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