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타자연습

[우울과 공존하기]

by 뚜우

번아웃이 찾아오면서 원래 치료 중이던 우울증이 심해져서 병원에서 새로운 약을 추가로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역시 현대의학의 힘은 대단해서 약을 추가로 복용하니 그래도 조금 더 살만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멘탈이 터져나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정말 불안과 우울이 max를 찍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보통 이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조용히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우울의 늪으로 더 깊이 데려가기 때문에 이걸 끊어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


특히 출근을 해서 앉아있으면 바쁠 때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 틈이 없지만 가끔 중간에 정말 작은 자투리 시간들이 생기면 그때마다 생각이라는 것이 어김없이 나를 괴롭히는데 이때 무언가 할 일을 만들어서 내가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일하는 중간에 생긴 자투리 시간이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은 할 수가 없어서 가볍게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어릴 때 자주 했던 타자연습이 떠올랐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일은 아니지만 계속 손가락을 놀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잠깐씩 하기에 좋고, 무엇보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없애는데 아주 제격이었다.


짧은 글 연습을 할 때는 제법 괜찮은 격언들이 있어서 재미가 있었고 긴 글 연습에는 소설도 있어서 내용을 읽으며 즐겁게 한 페이지씩을 채워갔다. 그러다 또 일이 바빠지면 열심히 일을 하며 생각할 시간을 없애버렸더니 우울에 방어막을 한 겹 친 느낌이라 좀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우울과 함께하는 일은 이렇게 늘 공존방법을 생각해내야 해서 고달프지만 그래도 우울에 굴복해버리지 않고 정면승부하는 내가 제법 자랑스럽다. 우울하고 생각이 많을 땐 타자연습. 오늘도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열심히 손가락을 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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