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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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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씨 May 06. 2016

5월 5일

좋겠다. 니들은 터닝메카드 받아서. 나는...

몰스킨 스케치북 / 라미 사파리 만년필

조카들 터닝메카드를 주고 이모집이 있는 시골 장흥을 내려갔다. 이모 혼자서 밭일 하기에 무리라서 엄마가 지원사격으로 나섰는데 엄마 고생할 것 생각하니 놀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연휴를 편하게 놀고 먹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에 내가 나서주는게 옳은 것 같았다. 알파고같은 나의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짜낸 묘수는 엄마보다 조금 늦었지만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같이 일을 도와주는 센스랄까?


물론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해봤자 뭐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버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장흥을 내려갔다. 직통이라 생각했던 버스는 2시간 걸려서 도착했지만 그정도는 뭐 소풍가는 듯한 이 기분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내려서 김밥이라도 사서 가볼까?  


터미널에 도착해서 룰루랄라~ 형 차를 타고 이모집으로 이동했고 창고 뒤에 있는 밭에서 일하는 엄마와 이모사이에 생생을 내면서 입장을 했는데 아뿔싸...


깨 숨그는(심는) 일이다. 큰일났다 ㅋㅋㅋㅋㅋ그냥 큰일이 아니고 이건 도망치라고 나의 뇌에서 계속 명령을 내렸지만 형은 이미 나를 내려놓고 사라진 상태였고(아파서 일을 못 도와줌.) 어쩔수 없이 나는 쪼그려 앉아서 깨를 심기 시작했다.


심어도 심어도 끝이 안 보이는 긴 밭에서 당분간 깨가 들어가는 음식은 먹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김밥에 뿌려지는 깨도 갑자기 가증스러워졌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깨도.. 깨 들어간 뭔깨라면도 아무튼 다 싫어졌다.


이모가 모자를 빌려줬고 엄마가 내가 쓴 모자가 잘 어울린다고 이모에게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본다. 나는 대충 농약사면 줬겠지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다행스럽게 어디 농약사라는 프린트는 없고 꽃무늬라서 나름 만족스럽긴 했다. 시골에서 보면 모자에 막 벼멸구 박멸 ㅋㅋ 이런거 써진 모자가 많다.


점점 일이 손에 익숙해진다. 빠르게 깨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그 위로 깨를 뿌리고 다시 덮고 일련의 과정들이 척척 아니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처음에 엄마가 나를 보면서 농사가 이래서 어려워 하더니만 이제는 농사 잘하것다고 칭찬을 한다. 엄마 칭찬하지마! 나 지금 다리 후덜거려!


시장이 반찬

중간에 잠깐 새참으로 베지밀과 빵을 먹으니 그 뭐시기 삼대천왕에 나오는 맛집 부럽지 않았다. 역시 힘들거나 배고플때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다시 이어서 깨를 심기 시작했다. 이모의 잔소리가 처음보다 많이 줄어 들었다. 도망칠수 없으니 포기하고 적응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정말 사람스러웠다. 급 훈훈해졌다.


복장도 소풍가는 복장이라 적당히 일하고 친구들 만나서 드라이브나 가거나 장흥 토요시장에서 고기나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친구는 개뿔.


그래도 다 끝나가니 보람도 있고 나름 재미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몸은 힘든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연휴에 푹 쉬면 괜찮아질테니 몸뚱아리의 반항은 그냥 무시했다. 팔이나 손가락만 멀쩡하면 그림그리고 놀 수 있으니 이정도는 괜찮다.

일 끝!

비 올 것 같아서 빨리빨리 일을 했고 비 내리기 전에 일은 끝났다. 형은 이모와 엄마를 태우고 집으로 갔고 나는 수레를 차에 넣기 어정쩡해서 손수레를 끌고 다리를 건너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다리 위에서 부는 바람은 요즘들어 맞았던 그 어떤 바람보다 시원하고 청량감이 느껴졌다. 머리는 땀에 젖어서 착 달라 붙었고 검정색 옷들은 흙으로 많이 더럽혀졌지만 뭐 어떤가 이곳은 시골이고 여긴 이런 모습이 더욱 어울리고 편한 곳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좋지만 농사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잠깐했다. 물론 땅도 돈도 없어서 농사를 하기에 문제가 많았고 일이 힘들드면 저녁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고 뻗어버리니깐 아직은 나에게 농사는 힘들겠지.


동네에 호섭이가 출몰했다.


수레를 끌고 이모집 앞으로 다가가니 형이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을 찍으면 포즈를 취하는게 인지상정이다. 형도 웃고 나도 웃고 아무튼 즐거운 하루였다. 광주로 다시 올라올 때는 형 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그림을 그릴 까 생각을 하다가 이내 접었다.  차 안에서 형 엄마 나 이렇게 셋이서 수다를 떠는게 더욱 값진 시간이라 생각했기에.


힘들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물론 이게 이틀째 이어지면 싫겠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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