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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씨 Jan 29. 2016

16/01/28-후회도 먹는다.

이 난잡한 글을 어찌하면 좋을지 후회를 한다.

몰스킨 까이에 포켓 / 피그마 마이크론 005

 장을 보러 광천동 이마트를 갈 일이 생겼다. 봉선동에도 이마트가 있지만 광천동으로 더 멀리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지하에는 파파이스가 그리고 터미널쪽에는 버거킹이 쌍두마차처럼 나를 그곳으로 이끌기 때문에. 어찌 보면 패스트푸드의 노예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게 자주 먹지도 않고 자주 장을 보러 다니지도 않는다.


 피부에 신경을 쓰지 않는 다 늙어가는 30대의 남자가 로션이 떨어지는 참사가 벌어지니 어쩔 수 없이 온라인보다 바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오프라인 마트로 갔지만 2배의 가격 차이에 그냥 그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라 생각한다. 어제 내가 검색했던 그 가격은 도대체 어느 마트란 말인가?


 무소음 시계는 온라인에서 샀다가 밤에만 들리는 지극히 점잖은 소음을 참지 못해 반품을 했고 마트에서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서 살 수가 없었다. 이쯤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내가 보여주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들었던 맥주는 살찐다고 내려놓고 먹고 싶었던 계란과자와 초콜릿은 찾을 수 없어 그냥 갱지 연습장을 하나 사서 왔다. 결국 마트를 가서 구매한 것은 달랑 500원의 갱지 연습장이 전부라니 왠지 너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물며 맥주는 살찐다고 내려놓은 녀석이 계란과자와 초콜릿은 사려했고 그것을 망각하고 햄버거와 치킨텐더를 주문하다니! 그 부분에서 퍽이나 웃음이 났다. 그러니 뱃살이 나온다. 포장해서 나가는 순간에 후회와 즐거움이 교차한다. 치킨의 냄새를 맡으니 신기하게 후회는 기억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쯤이면 노예나 다를바가 없다.


 먹어도 살 안 찌는 20대는 이미 몇만 년 전에  지나갔다.

몰스킨 까이에 포켓 /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0.5

 선택받지 못하고 반찬통 뒤로 밀려났던 팹시 콜라를 꺼내 들고 늘어가는 뱃살에 맞지 않는 두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바삭바삭한 튀김과 탄력 있는 닭고기의 만남이 입 안에서 절묘하게 어울리니 사지 못했던 로션과 시계와 맥주는 이미 청소기 앞의 먼지처럼 사라졌다. 물론 치킨과 햄버거도 같이 사라졌지만,


 다 먹고 포만감에 터질듯한 배를 보면서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너무 많이 먹었음에 아차 하는 마음이 들어 괜히 어울리지 않는 반성을 해본다. 그러고는 나중에는 적당히 먹겠다는 자신과의 지키지 않을 구차한 약속까지 한다.


먹고 후회할 것 같다면 그냥 안 먹으면 될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든다. 차라리 편한 성격이라 먹었으면 그냥 시원하게 "아우~잘 먹었다" 하고 끝냈으면 좋겠다. 이미  주문할 때부터 걱정하고 후회하더니만 결국 다 먹고 이런 고민을 하다니. 이러다가 그 후회까지도 먹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긴 그 후회를 먹고 후회하겠지.


2016년 01월 28일

지극히 사소한 그림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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