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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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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씨 Jan 30. 2016

16/01/29-버려라.

하지만 버린다고 자동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더라.

몰스킨 까이에 포켓 / 피그마 마이크론 005

새우튀김만큼 그림을 좋아하기에 가방에는 항상 노트와 다양한 펜을 넣어 다닌다. 만년필을 사용할까 잠시 고민을 했었지만 잉크를 교환하고 관리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게으름의 늪에서 366일 살아가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나  다름없었다. 결국은 다 쓰면 버리고는 일반 펜에 정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펜의 뚜껑을 열어서 심의 길이를 확인하고 그림을 그리다 펜이 잘 안 나오면 (심지가 닳아져 종이를 긁게 된다.) 쓰던 펜을 책상에  내려놓고 새로운 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다 그리면 그 버려야 하는 펜과 새 펜 모두를 가방에 쓸어 담고 다음 날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가방에는 같은 굵기의 펜이 5개씩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같은 굵기의 펜이 가방에 다섯 개가 모이기까지 얼마나 많이 "내일은 다 쓴 펜을 버려야지"라는 결심을 했을까?


오늘은 가방에서 수직으로 세워야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다시 말해서 다 사용하고 번번이 가방에  집어넣어 매번 뚜껑을 열어 확인을 하게 만들었던 그 원흉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방도 넓어졌고 내 마음도 한결 넓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든다. 즐겁게 그림을 그리게 해줬던 녀석들을 애물단지처럼 여기고 원흉이라  몰아붙이며 쓰레기통에 처박으면서 내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는 게 미안해졌다. 아마 다 쓴 녀석들을 다시 가방에 넣은 이유는 내가 건망증이 심해서가 아니라 미안한 마음으로 버리지 못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생각이 없는 것 같다.


2016년 01월 29일

지극히 사소한 그림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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