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림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씨 Jan 31. 2016

16/01/30-기억의 호수

적당히 잠길만큼

몰스킨 까이에 포켓 / 피그마 마이크론 005

기존에 사용하던 칫솔걸이는 솔 부분을 걸어서 사용하기에 자꾸 그 부분에 더러워진다. 찾아보니 이런 방식의 칫솔 걸이는 안 좋다는 말에 나의 팔랑귀는 이미 펄럭 펄럭 날갯짓을 하며 '다있소'를 다녀왔다.


 다있소에는 생필품들이 다 있었다. 액자나 스마트폰 필름, 그릇, 화분, 청소도구 등 많은 물건들 속에서 칫솔걸이를 찾지 않고  이것저것 구경하기 바빴다. 그러다 괜히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한 아파트에서 4명이 살며 인근 마트로 매번 생필품과 식자재를 사러 다녔던 기억이 떠올라서 혼자 히죽거리며 웃었다.


거울은 큰 게 좋다고 티격태격하고 드라이기는 두 개 있어야 한다며 싸우고 욕실 청소는 이게 좋다 저게 좋다. 그렇게 말하면서 옥신각신하다 결국은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나오면서 희희낙락 거리는  그때가 생각났다.  친구들이 함께 살면서 정이 많이 붙었나 보다. 싸우기도 오지게 많이 싸웠는데 한 녀석은 벌써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고 다른 녀석들은 부인을 찾아 승냥이처럼 떠돌고 있는 총각들로 변했다.



하네뮬레 트래블 북클릿 / 피그마 마이크론 05

도서관에서 '이노우에, 가우디를 만나다'를 빌려 읽고 있는 중이다. 이노우에는 어릴 때 동경하고 또한 많이 따라서 그렸던 강백호의 작가라 고민없이 책을 집었다. 만화방에서 매번 슬램덩크 단행본이 나오기를 기다렸고 혹은 월간 잡지 (챔프인지 점프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의 부록으로 연재되는 슬램덩크를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게 좋아하던 작품의 작가가 가우디라는 건축가의 건축물을 보고 감탄하는 글을 읽을 때 나도 그곳에서 그 사람이 봤던 그리고 느꼈던 감정을 겪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중간에 있던 구엘 별장 '용의 문'에서 눈길이 멈췄다. 정문에 이런 용의 문이라니! 이어지는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구엘 공원 마지막으로 파밀리아 속죄 성당까지 이런 곳이라면 본능적으로 수첩을 꺼내들거라 자신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그곳에서 서서 신명 나게 그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칫솔걸이나 만화책이 뭐라고 오늘은 그냥 옛 생각에 혼자 꽁알 꽁알 하고 있다. 그래도 기억의 호수가 메마르지 않아 이렇게 적당히 잠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2016년 01월 30일

지극히 사소한 그림 수첩.

매거진의 이전글 16/01/29-버려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