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싶은 그림과 그려지는 그림.
그리고 싶은 그림과 그려지는 그림이 따로 있다. 나는 유연한 선보다 사진처럼 칼같이 딱 떨어지는 맛의 그림을 더 좋아한다. 인물은 내가 선호하는 대상이 아니라 상관이 없지만 건물이나 자동차 물건의 그림들은 딱딱 맞아서 정교한 그림을 원한다.
하지만 원하는 그림이 있다고 그것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도를 해봤지만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사진 같은 그림이 아니라 사람이 그렸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전부다. 구불구불한 선과 맞지 않는 비례, 어긋나는 선들, 대상과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느껴지는 그런 그림들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내 그림이 무척이나 싫었다. 원하는 이상이 있지만 그 이상에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만 서성이는 나 자신이 싫어서 그림까지 같이 싫어졌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왜? 도대체 그런 사진 같은 느낌의 그림을 좋아하는 건가에 대한 대답을 확실하게 할 수 없었다. 아마 어릴 때 동경하던 작가들의 그림체는 모두 다 종이에서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할 정도의 실감 나는 그림이라 그 영향으로 그리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왜? 그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가를 고민하다 결국 스스로 답을 내렸다. 나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은 자신을 투영하고 자신의 성격이나 내면을 표출하는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정교한 사람도 아니고 나는 섬세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정리정돈도 잘 하지 못하고 계획적인 삶을 살고 무엇인가를 통찰하고 고뇌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물 흐르듯이 살고 쉬고 싶으면 쉬고 눕고 싶으면 눕는 그냥 지 맘대로 대충 사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교하게 세밀하게 그것도 측정을 하고 맞추고 원근법에 투시에 그런 기술이 필요한 그림을 그리려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마 그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지금 생에는 부족하고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를 것 같다. 결론이 나왔고 수긍은 고민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스며든다. 이제는 나의 맞지 않는 비례, 구불구불한 선, 어긋나는 구도, 뒤틀린 시선, 판이하게 다른 색, 이 모든 게 마음에 든다.
대상을 비슷하게 그리지 못하는 사람의 정신승리일 수 있지만 그보다 나에게 맞는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같지 않아도 좋다. 같아야 할 이유도 없고 같지 않다고 나쁜 것 도 아니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리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핵심이다. 그림의 결과와 기술에만 집착하며 온전하게 나란 사람에게 나왔던 열매를 싫어하며 기피했던 시간들이 아쉽지만 그것 또한 나의 모습이라 좋다.
그때와 다르게 나는 대충 그리고 대충 즐기고 살고 있다.
나는 정교한 사람이 아니다.
2016년 02월 01일
지극히 사소한 그림 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