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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도둑고양이로 살자

돌이켜 보면 두 권의 책이 그림으로 향하도록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책은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입니다. 책의 주인공은 얼룩 고양이입니다. 얼룩 고양이는 여러 사람들의 고양이로 태어났다 죽기를 반복합니다. 임금님, 마술사, 어부, 소녀, 도둑, 할머니의 고양이로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만의 고양이로 태어납니다.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것입니다. 몇 번의 환생을 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만의 삶을 산 적이 없던 고양이가 길고양이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흰 고양이를 만나서 사랑하고 새끼들을 낳고 행복하게 지냅니다. 어느 날 흰 고양이가 나이 들어 죽습니다. 얼룩 고양이는 흰 고양이를 안고 며칠 동안 울다가, 결국 흰 고양이 곁에서 죽어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한동안 그 책을 읽을 때마다 어찌나 눈물이 많이 나는지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직장과 육아로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30대에 동화책 한 권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난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 환생이 있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후회 없이 살고 있는 건지, 내가 이 생에서 힘껏, 마음껏 사랑하고 있는 건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 아들, 아니면 어떤 직함을 떠나서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동화책을 볼  때마다 왠지 그 하얀 고양이를 한 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년에 지인에게서 엄마 잃어버린 새끼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리오를 보면 사노 요코의 얼룩 고양이가 생각납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거나, 비 맞은 채로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면 그래도 우리 리오가 낫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집에 내내 갇혀 있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리오가 누군가의 고양이로 사는 삶이 정말 괜찮은가 싶습니다. 하얀 고양이 대신 리오를 가끔 그려봅니다. 하얀 고양이는 나중에 따라 그리려고 아껴 놓았습니다.




두 번째 책은 대니 그레고리의 ‘창작 면허 프로젝트’입니다.
책 전체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일상에서 쉽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 어떻게 시작하는지 잘 나와있습니다.


책의 내용들이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아래의 질문들이 나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열광적이 되는 것도 허용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읽고 머리가 멍했습니다.

전 지금까지 자신이 열광적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말하는 ‘덕질’이라는 것에 한 번도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여고 시절 있을 법한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도, 심지어 연예인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좋아하길 거부했습니다. 뭔가에 열광적이 된다는 것은 평온한 일상을 깨는 일이니 차라리 밋밋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별반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분명하지 않았던 회색처럼 흐릿한 과거를 회상하고 나니 총천연색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신기한 세상이었습니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처럼 전 이렇게 새로운 그림이라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그림에 관련된 관심은 더 커져서 도서관에서 매주 관련된 책을 빌려 보고, 그림 도구를 하나씩 모으고, 그림에 관련된 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수채물감도 사고, 봄나들이하면서 야외 스케치에도 도전했습니다. 또 수채 물감으로 엽서에 예쁜 색을 칠하고 그 위에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고 혼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수채화 용지에 시를 필사하면서 살아도 꽤 즐겁겠다 생각했습니다. 전 그렇게 천천히  내가 ‘열광적이 되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작 면허 프로젝트'를 보고 또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융통성과 열린 마음,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죠. 그래서 좀 나를 파악해보려고 시도를 해봤습니다. 그림 재료도 하고 그림을 몇 번 그렸습니다. 아래 그림은 중이염으로 이비인후과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들입니다. 아들이 이 그림을 보고 너무 실망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을 파악하기 전에 난 그림에 재능이 없나 보다 하며 좌절해서 그만두게 됩니다.


인물 그리기는 쉽지 않은데 처음 그림을 시작하면서 사람을 그리다니 너무 용감했던 거죠.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되려면 단계가 있는데(다음 챕터에 나옵니다) 저는 3단계 정도를 건너뛰고 싶었던 것입니다. 운전면허도 없는데 도로 주행을 하면서 어렵다고 운전을 포기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림엔 재능이 없구나 생각하고 포기한 뒤로 3년이 지나서 2018년에 다시 시도를 했고 그림 동화책 따라 그리기를 시작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는 1000일을 보내게 됩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이 되었다”
창작 면허 프로젝트에 나온 글입니다.

대니 그레고리는 날마다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하지만 진짜 왕초보들은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는 것을 저는 동화책을 따라 그리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왕초보에서 탈출한 저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실력에 상관없이 그림 그리기가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림의 수준에 상관없이 못 그려도 괜찮은 그림을 매일 그리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실래요?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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