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반짝이고, 이별은 조용하다

가장 행복했던 날 내게 이별이 다가왔다

by 매일내일

마냥 즐겁고 행복한 신혼여행이었다.

여행 이틀차 아침, 카카오톡 가족채팅방에 한 문구가 올라오기 전까지는.


"할머니 오늘 돌아가셨어, 내일이한테는 연락하지 마.'


정신없는 와중에 엄마가 잘못 올린 카톡 한 줄.

내 신혼여행에 방해될까 할머니 부고를 나에게 숨기고자 했던 엄마의 의도가 무색하게도

내가 바로 알게 된 우리 가족의 비밀.


6월에 치러진 내 결혼식, 그 결혼식의 직전 겨울부터였나,

나와 딱 60세가 차이나는 우리 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신기하게도 나는 부모님과 30세, 우리 아빠는 또 할머니와 30세 차이가 난다.)


동네에서도 정정하기로 소문나 있던 우리 할머니,

언제까지나 건강하실 것 같았는데, 역시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지

그 겨울부터 시름시름 앓으시더니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 못하셨다.


사실, 난 할머니와 그렇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고향에 돌아온 20여 년 전부터 할머니댁 근처에 살며 자주 왕래하긴 했지만,

이미 자아가 형성된 나이였던 나에게 할머니는 마냥 편한 분은 아니셨다.


내 기억 속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할머니 기억들 몇 조각.


어릴 때 아빠의 무릎에 앉아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다 큰 애가 아빠 무릎에 앉는다고 혼내시던 할머니,

한 번 할머니와 함께 갔던 목욕탕에서 내 얼굴까지 때수건으로 박박 밀어주던 할머니.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던 우리 집에 바리바리 싸서 가져오시던 반찬들(대부분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명절 때 할머니댁에 가면 만들어주시던 식혜, 그리고 지역향토음식이었던 어리굴젓과 간장게장.

게장을 워낙 좋아하던 우리 남매였기에 할머니는 다른 식구들도 줘야 한다며

게장의 일부는 꺼내주시지 않은 적도 있었지.


가끔은 새벽부터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눈 비비고 일어나면 이미 우리 집에 계시던 적도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불편하고 귀찮아 이미 눈을 떴는데 방에서 자는 척하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언제나 꼬장꼬장할 것 같은 할머니가 몇 년 전부터는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쇠약해진 본인의 미래를 미리 알고 계셨던 게 아니었을까.


덩치만 컸지 스무 살이 훌쩍 넘어도 취업을 못한 우리 남매들에게

명절이면 할머니는 우리가 어릴 때와 다름없이 세뱃돈을 건네주시곤 했었다.

할머니와 보낸 마지막 명절, 본인이 아프다고 이제 용돈도 안 준다고 투덜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우리 할머니 아직 건강하네" 하며 웃었었는데.


그렇게 이제 남은 돈도 없다고 하셨으면서,

우리 가족 이사 간다고 하니 슬며시 건네주셨던 이사비용.

그리고 내가 결혼한다고 미리 주셨던 축의금.

그 축의금이 결국 내가 할머니에게 받은 마지막 용돈이 되었다.


할머니의 자식 6명 중 다섯째였던 우리 아빠,

그런 아빠의 자식이었던 우리 삼남매은 모두 늦되어서

다른 사촌들이 모두 결혼하고 또 그들의 자식을 낳아

우리 할머니가 증조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다들 분가하지 못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오며 가며 들여다보고 가끔 잔소리하셨었는지도.


그런 할머니에게 우리도 결혼하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손주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불과 몇 주 전, 결혼식 잘 치르고 오겠다고 손을 꼭 잡고 인사드렸는데.

할머니는 결혼식 며칠 뒤 조용히 먼 길을 떠나셨다.

'할머니, 할머니도 내 결혼식은 보고 가고 싶었던 거지?'


먼 타지인 신혼여행 숙소에서 일어난 이른 아침,

침대에서 뜻하지 않게 할머니의 부고를 듣게 되고 옆을 보니,

피곤한 여행일정에 세상모르고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이 있었고

나는 가만히 일어나 욕실에 가 눈물을 훔쳤다.


신혼여행 끝나고 돌아가면 나 결혼식 잘 치렀고, 잘 살겠다 인사드리려 했는데

뭐가 그리 급해서 먼저 가셨을까.

그래도 손녀 결혼식 보고 가신다고 끝까지 힘을 내셨을 거라 생각하니

할머니의 그 마음이 느껴져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할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고도 나의 신혼여행은 계속되었다.

여행을 하며 마음 한편에는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내가 지켜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래서 마냥 즐겁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남편이 있었고,

우리 할머니라면 분명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해 줬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머지 여행일정을 소화했던 것 같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도

할머니는 내 마음 한편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사람에게 쉽게 꺼낼 수 없는 마음을,

내 결혼 2주년 그리고 할머니 별세 2주기를 맞아 이렇게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지는 건, 생각보다 할머니는 내 삶에 깊이 들어왔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에 대한 그리움을 진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들 하는 진부한 표현처럼 왜 옆에 있을 때는 그 사랑과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누군가는 영원한 이별을 한다.


유난히 할머니를 닮았다는 나.

그런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나는 할머니에게 이별의 인사를 하고,

이제 남편의 손을 잡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내가 가장 행복하던 순간, 나는 동시에 큰 상실을 느꼈고

그 상실은 또 후회와 그리움이 되어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내 남편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가끔씩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나는 종종 웃으며 가족들과 할머니를 추억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조용히 그리움의 눈물을 짓는다.


세상에는 이러한 이별도 있다는 것.

누군가는 공감해 줄 수 있을까.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할머니가 계신 그곳에 닿기를 바라며,

천천히 마음을 꺼내어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