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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May 18. 2022

존버합시다. 점심시간.

어쩌다 '통한'의 점심시간이 되었을까.

'직장인은 방학도 없는데.점심시간도 없었음. 삶의 낙이 없었을 거야...'

-친구 h의 명언-





  유튜브로 요가 스트레칭을 배우며 오전을 보냈다. 어제 운동을 다녀왔으니 오늘은 근육을 쉬게 할 겸 해서 아주 느리게 느리게 스트레칭을 한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수국이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처럼 화분의 흙을 밟고 서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기사 3면을 보고 필사하며 정리하고, 관심을 가지는 주제를 오픈 채팅 친구들과 개인 SNS에 계정에 공유한다. 이것으로 나의 오전 일과는 끝이다. 얼추 점심시간인데 뭘 먹지. 고민한다.



‘누군가’는 점심시간이 곤혹스럽다.

  일했을 때 나는 점심시간을 거의 없는 시간으로 치부해가며 살았다. 내 직업이 가장 바쁘고 고귀하고 고단해서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우선순위를 정해 막고, 막아봐도 손 안에서 흘러넘치는 일은 점심시간을 매번 포기하게 만들었다. 수선생님이나 선배들에게 밉보이는 날엔, "너 이래 놓고 점심이 넘어가니? 나 같으면 밥도 안 먹고 해 놓겠다. 배에 밥 귀신이 붙었나."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아닌 날에도 눈치가 보여 안 먹는 게 편할 때도 있었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의 의미는 휴식을 의미한다는, 하루 업무 시간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도록 허락받은 시간이라는 글도 있던데, 나와 내 동료는 그 시간을 쉽게 포기하곤 했다. 나갈 수도 없었지만 쉬기도 애매하고 포만감 있게 먹지도 못할 한 시간의 사투를 벌이러 북새통인 가게 앞이나 급식 줄을 서는 것은 더더욱 곤혹스러워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은 누구 에게나 공평하게 오지 않는 것 같다. 땡볕에서 일하는 공사현장의 인부들, 휴게시간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순간조차도 '업무능력 부족'이라며 업무를 떠안고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곳곳에 넘쳐난다. 먹는다고 해도,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암묵적 조항'을 핑계로 내세워 원치 않는 음식을 목구멍에 욱여넣는 상황도 많다. 누군가의 점심시간은 이렇게 곤혹스럽다.


 그 일은 오늘 내 친구에게도 일어났다. 친구는 점심밥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식단이 나온다며 기대로 잔뜩 부풀어있었다. 사무직인 친구는 직장상사에게 불려 가 서류작성을 엉성하게 했다는 이유로 업무 지시를 받는다고 결국 점심시간을 넘겨버렸다고 한다. 친구가 좋아하는 반찬의 얼룩을 입가에 묻힌 상사의 입에서 그 친구는 한 시간의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 채 서 있었을 것이다. 통한의 카톡을 내뱉는 친구의 상황을 전해 듣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또 다른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나는 왜 출근해서 밥시간만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직장인은 방학도 없는데. 점심시간도 없었음. 삶의 낙이 없었을 거야...'

-친구 h의 카톡중에서-


 

 통한. 몹시 분하거나 억울하여 한스럽게 여김이라는 뜻이다. 직장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점심시간에 이 단어를 써왔을 것이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당연히 소중하다.모든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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