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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Jul 24. 2021

Under the waves of the night.

깊이 잠수하던 밤



한달에 한 번, 딱 하루.   

밤하늘 아래로 몸을 숨기곤 한다.


  일명 '잠수하는 밤.' 그것이 최근에 내가 새로 벌인 일이다. 도저히 내가 안되겠을 때, 그리고 불규칙한 순환의 근무날 중에서도 나이트 근무는  말일마다 정기적으로 돌아오곤 하니까, 거의 한달에 한 번, 원 나이트 근무(One night duty)가 있을 때는 하루를 흐리게 지워두고 M시의 호텔에 머무르곤 했다. 나에게 어쩌면 두번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탈.


 

사실 내가 아는 작가님이 이 곳 호텔리어로 계신다. 2-3년전 어느 책방에서 만나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한달에 한 번씩 벌써 두 번의 신세를 지곤 했다. 요즘은 작가님이 더 바빠져서 자주 보지 못하는데, 이렇게라도 가니 얼굴을 뵐 수 있어서 좋다.  호텔에 왔을 때마다 같이 붙어있는 작가님의 짝꿍 선배님의 얼굴을 자주 봐놓으니, 마치 내 선배인 것 마냥 반갑다. (실제로 인사는 안했다. 놀라실까봐)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객실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 보이는 바다의 풍경 때문에 마음이 탁 트이곤 한다. 내가 사는 곳에는 올라가도, 올라가도 죄다 막힌 건물들 뿐이니 멋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까지 주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이 곳에 오면  바다 때문에라도 살 것만 같았다. 아 이래서 호캉스.호캉스 하는구나. 싶다.


처음 왔을 땐 남들 하는 것 다 따라해볼거라고 배쓰 밤에 이것저것 맛있는 커피도 사놓고. 책, 노트북, 공책, 바리바리 싸들고오고 그랬는데 두 번째 올때는 그냥 맥주 한캔, 노트북, 책 한 권. 으로 짐을 확 줄였다. 하루만에 글쓰고 책 읽고 마시고 사진찍고. 사실 혼자 하기엔 무의미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룻 밤 안에 글이 뚝딱 써지고, 두꺼운 책이 금방 후루룩 읽히고, 영화를 밤새 보고 맥주를 들고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벅찬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평소에 그렇게 안되다가 잠자리를 바꾼 하루만에 그렇게 다 할 수 있으면 이미 책 두권은 썼겠지. 역시 로망은 로망이요,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은 말이지, 도착해서 맥이 빠져 눕고, 겨우 일어나 맥주 한캔 따서 호로록 마시고 눕고, 밑에 편의점 잠시 다녀왔다가 눕고. 아는 사람 왔다가서 영화보다가 눕고... 눕방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밤에는 거리의 네온사인이나 부두의 불빛, 가까이 보이는 (것같은) 대교의 반짝거리는 램프 뿐이라 가지고 있는 휴대폰 카메라로는 느낌이 잘 살지 않기도 한다. 부족한 사진 실력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냥 눈으로 담고 그날을 기억속에 저장하는 편이 훨씬 더 화질도 깔끔하고 자막도 달기 더 쉽다고 느낀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밤 앞에서 우왕좌왕하다보면 어느새 동 틀 무렵이다. 젠장. 책은 가까스로 2부쯤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시의 파도 아래 잠수하는 밤을 만들어 버린 것은. 내가 도시의 불빛에 훼손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러다 영영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곳 M시는 아늑하고 정겨운 느낌이 나는 동네다. 때로는  거친 말을 쓰는 상인들과, 북적한 시장 속 살벌함을  마주할 수도 있고, 시비가 붙은 취객들과 깊고 검은 바다가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살아가는 곳이라 생각하고 조금 더 시선을 들어 어떤 말을 전하는 등대의 불빛과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대교의 깜빡이는 불빛과 늦은 밤까지 신호등의 신호에 맞추어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고 생각을 맞추다 보면 하나의 재즈가 완성되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영화 [시카고] 속 'cell block tango' 의 인트로처럼 손가락을 튕기고, 창문 사이로 난 긴 난간을 두드리기도 하다가, 사이사이 술을 홀짝이는 소리까지 곁들이면 에밀 졸라가 썼던 소설의 목로주점 속 제로베즈가 되기도 하고 시카고 속 록시 하트가 되어 한 편의 뮤지컬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도 느껴볼 수 있다. 계속 그렇게 두드리다 보면 정말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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