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종종 어지르고 산다. 아니 매일 어지르고 사는 편이다. 침대 머리맡, 발끝, 그리고 내가 가는 곳마다 책들로 난장판이 되어있기도 하고 좋아하는 문구류와 메모지들은 책상 위나 식탁 위, 때때로 싱크대 위에까지 점령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주위에 넘치는 것은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복잡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런 삶이 되기도 하고, 같이 살고 있는 사람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주범이 되기도 하니까.
자주 난장판이 되었지만 그 속에 어떤 물건이 있고, 어떤 물건이 또 없는지는 오롯이 나만이 알고 있다. 나만이 아는 그 공식은 때때로 도피처가 되기도 하니 어지르는 삶을 사는 사람에겐 위안이 되는 일이다. 당연히 같이 살고 있는 엄마에겐 전혀 이해되지 못할 종류의 짓이겠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꿋꿋이 나만의 어지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생각마저도 그렇다. 혼잡하게 마구잡이로 피어올라 삶을 어지럽히는 동안에도 어질러진 것은 꼭 제자리를 찾아가 정리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런 것 때문에 억지로 생각을 치우지는 않는다. 환영하진 않지만 그것도 어쩔 땐 그것 나름대로 신나는 일이니까. 그러다 한번씩 대청소를 해야 되는 날이 오면 기차표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