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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Sep 02. 2020

해외여행 말고 동네 여행

01_아무튼, 놀아!

 아무튼, 놀 것이다.


 

 앞으로 내 글에서 아무튼.이라는 말을 자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튼' 시리즈를 ‘아무튼, 로드 무비'로 처음 접하고 나서부터 쭉 덕후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건 좀 티 내 보고 싶었다. 아니 그냥 대놓고 말하고 다니고 싶다.


 아무튼, 아무튼이라는 말. 책의 시리즈로서도 좋아하지만 그 단어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어떤 걸 고심하지 말고 ‘아무튼간에' 해보자.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책을 보면서 내가 관심 가졌던 것이 뭐든 시작해 볼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아무튼, 놀아! 근데 뭘 하고 놀지?


 올해는 서핑을 배워보고 싶었다. 쉬는 날 본격적으로 카페를 투어 하며 글을 쓰고 싶기도 했고, 휴가가 있는 여름에는 삼일 연속 쉬는 날 혼자 캠핑을 떠나서 자연의 소리를 벗 삼고 책을 탐욕스럽게 읽어내리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과 모여 독서모임도 막 활발하게 시작한 시기였다. 그렇게 내 안, 어느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하고 잡이’ 씨를 컨트롤하며 그분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육신의 스트레스도 풀고, 정신적인 충만함을 얻고 있었다. 또 앞으로도 그런 소망이 있었기에 부단히 사진 공부에도 열을 올리고 있기도 했다. 사진은 찍는 각도에 따라 색다른 시선을 기록해주는 장치니까. 이왕이면 잘 찍어서 포토에세이도 하나 내볼까. 싶던 참이었다. 꼭 책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해도, 나 혼자 만족할만한 기록물이라도 만들어서 다이어리나 방 안에 예쁘게 적고 붙여서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망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계획을 마쳤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가 터져버렸다.




처음에는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


이렇게 열심히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그리고 매년마다 계획하고 성장하기 위해 이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직장에 몸뚱이를 구겨 넣고 다녔는데, ‘코로나’는 야속하게도 이런 나의 계획을 구깃구깃. 접어 단 한 번의 손짓으로  휴지통에 골인시켜버렸다. (하지만 휴지통까지 비우는 것은 나의 권한이라 실행되지 않았다. 다만 기약 없이 담겨 있을 뿐.)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도 곧 비상이 걸렸고. 전국의 모든 문은 폐쇄되었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일시 중단되었다. 다행히 인간관계는 그 전에도 교류가 적었어서 타격이 가장 덜하긴 했지만. (쓰면서 눈물 같은 건 안 났다. 진심이다.)


 사람이 없는 거리를 걷다 보니 어딘가를 가고 싶지도 않았다. 연일 바이러스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참에 외부에서 내부로 시선을 돌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시간을 너무 허비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후회가 많은 사람이었다. 집콕 놀이를 하다가 이제 바깥으로 나왔는데 다시 집콕이라니. 허탈한 웃음도 나왔지만  안에서도 분명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만족감을 얻는 행위는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이내 그것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아무튼, 참회하면서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그런데 뭘 하고 놀지?


1. 해외여행 말고, 동네 여행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나는 자발적으로  격리되는 시간을 가졌다. 해외에 갔다 왔다거나, 어디에서  단체모임을 했다거나, 집회에 참석해서 격리된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단지 격리하는 시간을 두고서 내 삶을 찬찬히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는 휴무날 아침이 되면 자동적으로 267번을 틀고 요가를 따라 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사이 눈을 뜨자마자 자신에게 ‘오늘 어디로 나가보지.’ 하고 묻던 물음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이 뭐였을까? 나를 나가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 일까?’ 하는 물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일 휴무날이 되면 어딜 나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자신이 조금 낯설게 보인다. 모두 내가 좋아했던 일이었지만 그 뒤에까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 명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를 어딘가 집착스러워 보이고 불안한 아이로 보게 된다.

 ‘나마스테 요가'가 끝나면 (동작을 따라 하는 내 모습은 전혀 나마스 떼 하지 못하지만)  얼추 해가 뜨는 시각이다. 나는 그때까지 내 안의 답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한다. 무장하고 그냥 나가볼까? 하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다. 뭘 할지 고민하다가 하천길에 세워놓은 내 애마부인(내 빨간 차)을 보러 베란다 앞에 섰다. 차를 보면 고민이 풀릴 것 같았다. 저 차를 끌고 나갈 만큼의 여력이 생긴다면, 나는 당장 어딘가를 검색해서 운전대를 잡고 나갈 것이다. 하지만 차를 보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보인다. 저마다 반려견이나 옆 사람과 함께 걷는 사람들. 단단한 시멘트가 흙으로 변하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본다. 순간 이거다! 싶다.


아무튼, 해외여행 말고 동네 여행이다. 결정한 순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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