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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Aug 27. 2020

나는 가끔씩 당신의 손톱이 되고 싶었다.

한 곳만 바라볼 때 꽃은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시선을 한 곳으로만 두게 된다. 발버둥을 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지만 그것은 그렇게 다시, 본능적으로 그 사람에게 그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던 시절에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는 결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깔끔하게 만나고 헤어진 사이였다면 미련도 없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몇 년을 질질 끌었던 짝사랑이었다. 그 긴 공백을 가지고서도 정작 고백은 하지 못하고 사이사이 다른 연인들을 만나며 사랑 받고 상처받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적으로 그와 연락이 닿았다.



 첫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6개월 뒤의 이야기다. 용기를 내서 카카오 톡 친구 목록에 흔한 이미지 사진하나 없이, 그의 알 수 없는 속과 비슷하게 이미지 없이 떠오른 그를 보며 버둥거린 3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그에게서 온 답장은 3분 이상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사람도 사실 나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은근하게 바라만 보던 내 시선을 그는 오해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고 시선만 주니까 때때로 나를 싫어해서 그렇게 쳐다보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점점 나를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 한 곳만 바라본 탓이었을까. 사랑은 함부로 자라지 않았다. 너무 한 가지만 바라보면 자라지 않는 것은 사랑도 마찬가지인가보다. 꽃도, 끓고 있던 물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져버리고 식어버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모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듯. 사랑도 그렇게 하면 똑같이 부끄러워하며 자라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때까지 몰랐다.  


 그 사람은 이제 내 안에서 영영 자라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쳐다만 보고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으니까. 물을 주지 않았고 더 이상 온도를 높여 끓는점을 높이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바라만보다 더 멀어져버리게 했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내 다음 사랑은 조금 더 자랄 수 있겠지. 내가 바랐던 그 사람은 아니어서 조금 씁쓸했지만 나는 나에게 다가온 그다음 사랑을 얼른 붙잡았다. 마치 쓰디 쓴 한약을 코를 집어가며 삼켜내고는 사탕을 한 움큼 집어먹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급하게 잡았던 사랑도 얼마안가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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