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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Jul 07. 2021

비에 생각이 깊게 잠기던 밤.

01. 비는 우리를 씻겨주기도 하지만   더러는 상하게도 만든다.


 대충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올해의 여름 장마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작년처럼 기록적인 폭우와 함께 시작하는 장맛비는 거의 모든 것을 쓸어가려는 듯 내리고 있었다. 그 풍경은 큰 대로에 접한 길목이나, 어느덧 정이 들어 자주 찾기도 하고 그만큼 헤매기도 하는 좁은 골목도 비슷했다.     


 거센 비를 보며 그래도 마음이 놓이는 것이 있다면 여름날에 내리는 장맛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고 있음을 확인한 것뿐이다.           


 비가 오는 날은 화단에도 물이 넘쳐 꼭꼭 물고 있던 붉은 흙을 토해내곤 하는데, 그런 것을 볼 때면 올해도 참 모든 것이 비에 휩쓸리고, 떠내려가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아니면 속에 꽉꽉 들어차 버린 것들을 결국 비라는 핑계로 모두 토해낼 수 있으려나. 싶은 기대감도 살짝 얼굴을 비춘다.      


그것을 받아내야 하는 인간들은 곤란해지겠지만 자연은 한결 속이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을 그렇게라도 가볍게 줄일 수 있겠지.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을 꺼려한다. 모든 운전자들이 그렇겠지만 다른 날 보다 시야 확보도 어렵고 두 배로 미끄러지기 쉬운 날이기 때문에. 주변 운전자들과의 예민한 기운을 방어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가만있어도 스트레스받는 하루인데 괜히 이것저것 더 얹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날이 바로 비 오는 날이다. 특히 앞차가 물 폭탄을 보내와서 시야가 가려지는 그 몇 초는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니까. 어렸을 때 누군가 나에게 쳤던 장난 중에 눈을 가리는 장난이 있었는데, 거짓말 안 하고 진짜 무서워서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아 울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비가 오는 날 차를 타고 나가면 비를 더 맞고 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니 차라는 게 마음을 안일하게 만들어 놓으니까 우산을 자주 놓고 다니게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서서히 옷을 적시는 가랑비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나는 자주 비를 맞고 다녔다. 그러다가 자주 감기에 걸려 으슬으슬 몸은 추웠고, 더 자주 아파해야 했다. 비에 젖은 옷은 이따금 꿉꿉해져 쉰내를 풍기기도 했다.     


 내리는 비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좋은 영감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움직일 때는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아주 짓궂은 친구로 변하기도 한다. 장마가 그치고 뜨거운 여름 태양이 대지를 말릴 때면 보석이 빛나듯 반짝거리겠지만, 그것까지 생각하기에 지금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내리는 비는 아주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센 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에서 집채 만한 양동이를 부어버린 것처럼말이다.


집에 어떻게 가야 하나 싶어 근심스러운 마음에 한숨을 푹 쉬어보기도 하고, 비가 그칠 때까지 조금 기다려볼까. 입술을 앙다물어보기도 한다. 지금 한 순간 내린 비에 절망하지 말고 조금 더 버텨서 개일 때까지 기다려 보는 거야. 장맛비는 또 언제 내리고 그칠지 모르니까 말이야. 해보지만 조금 전에 마신 차가운 라테와 가게 안 에어컨의 환상적인 궁합으로 몸이 떨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글을 쓰고 있던 노트북을 황급히 닫고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뛰어들 듯이. 다행히 이번에는 우산을 챙겼다. 하지만 거센 장대비에 우산은 쓰나 마나였고. 곧 우산 안으로 비가 들이차고 말았다. 나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비에 푹 젖어 버렸다.


 오늘도 그렇게 비를 맞아버린다. 종이로 된 가방도, 마찬가지로 종이로 된 소설책들도, 그나마 단단한 노트북과 기계들마저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냥 푹 젖는다. 비는 사람을 아주 예쁘게도 씻어주기도 하지만, 더러는 상하게도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조금 더 압도적인 비율로. 후자의 경우에 공감이 간다. 비는 역경을 헤쳐 나가 보려는 사람을 때때로 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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