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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Sep 01. 2021

디아스포라

출항

대구에서 태어나 육 년을 살았고, 고향에 발붙인 것보다 땅에 뗀 걸음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 이사를 자주 다녔다. 자주 다녀야 했다. 언니의 방랑으로, 그리고 엄마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렇게 시작된 유랑생활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뿌리를 내리는 것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뭐라 이름 붙일 수 없었지만,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접한 지금. 나는 비 자발적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육체는 어딘가로 떠나 걷는 것이 익숙했지만 정신은 늘  한 곳에 머무르기를 원하며 쉬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나와 반대로 자발적인 ‘디아스포라'의 삶 그 자체를 살았다. 지금의 내 나이를 살았던 그 당시에. 원치 않은 이런 경험은 어린 몸에 짙은 피로감을 새겼다.

그리고 몸이든 정신이든 각자 다른 데로 흩어져 있었던 우리 자매는 달라도 너무 다르게 자라났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깊게 들어갈 수 없는 동네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엄마가 네가 앞으로 쓸 소설에 나올 이야기의 8할은 그때 겪었던 이야기 중 하나일 거라 말한다. 어린 나이에 들었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반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들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기도 했던 나는 너무 피곤해서 어디에든 주저앉으면 엉덩이에 당장 뿌리가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함부로 뿌리를 내릴 수도 없었기에 주저앉는 것 마저 눈치를 봤던 시절이었다. 그건 아마 엄마도 똑같았을 것이다.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이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얼른 되돌아가고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까. 차마 어린 딸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 무거운 짐과 더 무거운 핏덩이 같은 또 한 명의 자식을 끌고 다녀야 했을 엄마의 고단함은 이제야 생각이 난다.  



우리 모녀는 어디든 짧게 머무르며 서로에게 마음을 담가야 했고, 또 지나치게 부대껴야 했다. 거기서 오는 피로감이 거세질 때면 바다에 가서 몸을 씻기도 했다. 그러면 고민거리는 무참히 씻겨 내려가고. 시원함만 남았다. 혹시 그 경험이 지금도 내가 몸담을 공간을 찾으러 다니는 것에 대해 집착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머무른다' '머무름'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공간이라면 더 좋아하는 것도. 다 그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 되돌아보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건 소중한 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행의 기억이기도 하다. 이러다 터전 없이 떠돌아다니기만 할까 봐 걱정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어디든 내 한 몸 뉘일 공간 하나 없을까. 낙관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그 후로 여행 같은 삶에 익숙해진 나는 어딜 가든 쉽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떠나는 게 너무 쉽게 느껴질 때면 무서워질 때도 있지만.


다행히 학창 시절엔 안전하게 거제도에 정착을 할 수 있었고, 11년 동안 살다가 지금의 창원에 도착 해 살아간다. 살아가고 있다. 내 나름대로 창원을 나의 터전이라 생각하고 이방인 같던 이 구역에 정을 붙여가기 시작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자꾸 더 큰 곳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노력을 하는데 나 혼자 유유자적하고 있다.


 지금도 여유롭게 창원, 내 집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바다에 관한 다큐를 보고 있는데 곧 출항하는 배가 카메라에 담겨 있다. 갑자기 보고 있던 배처럼 떠나고 싶어졌다. 이 커피처럼 조금 더 진하고, 깊은 맛을 내는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핑계로 바다에 한번 가볼까? 자유롭지만 다시 돌아오게 될 어느 하루를 위해 나는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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