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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Dec 30. 2023

사람 공부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한 반 년만이었나. 


그 지인은 주문한 레몬차를 휘저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우울증이라면서, 살이 쪘네? 우울하면 못 먹고 그런다던데, 빼짝 말라야 되는 거 아닌가?오히려 편해보이는 얼굴인데." 

얼굴 맞댄지 1분만에 숨이 막힌다. 저 사람이 주변에서 다정한 공감왕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게, 갑자기 억울해진다. 쓸데없는 동정만 잘 하면서, 그걸 공감이라고 믿고 있는 인간이다. 


"네.. 먹고 누워만 있어서요. 저는 굶을 때까지 굶다가 몰아서 먹어요. 그 영향도 있나봐요." 

"에이, 젊은 사람이 축 쳐져서 그게 뭐야~ 좀 웃으면서 다녀. 화난 것 같잖아~ 힘들면 이야기 좀 하고. 나 알지? 고민상담 잘 하는거? 내가 나이가 좀 있어도 20대들한테 인기가 엄청 많아. 언니, 언니하면서 어찌나 따르던지. 아무튼, 자기도 언제까지 그렇게 축 쳐져서 살거야? 운동 좀 하고 그래. 우울증에는 산책만한게 없어. 그러면서 몸매도 예뻐진다? 그러면 남자들이 공주님 공주님 하면서 대접해줄걸. 글쎄 내가 산책을 어떻게 하냐면... 블라블라~"


우울증인 사람은 그것을 몰라서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다. 이토록 친밀한 관계라면서 떠벌려놓고는, 가까운 거리에서 칼을 쑤시는 당신 같은 사람 덕분에 덧나는 병이다. 내가 힘든 이야기를 당신께 전하지 않았을까. 평소에 오지랖이라는 오지랖은 다 부리다 내가 진짜 마지막 털어놓을 사람이라고 전화한 날 당신은 나에게 도리어 화를 냈다. "겨우 그거가지고 그래? 아이구. 세상 어떻게 살아. 다 그렇게 살아! 유난 떨지마. 그 애들 신경쓰지마~"


 우울증에 걸리면 대부분 젖은 솜이 되어 한 곳에 누워있거나 잠을 자거나 오히려 식욕이 제어가 되지 않아서 폭식하는 경우도 많다. 우울증이라고 해서 다 병약해지거나 바람 불면 어디 휙 날아갈 거라는 이미지는 거의 다 미디어에서 소비한 이미지일 뿐이다. 


나는 항상 뻥 뚫려버린 마음을 음식이나 책쇼핑으로 채우곤 했다. 보지도 않을 것들. 사라지는 것들로 나를 채웠다. 나는 감기에만 걸려도 입맛이 오히려 도는 사람이었다. 자주 입이 허해서 주머니 속에 사탕이나 젤리 같은 걸 들고 자주 먹었다. 밥을 한 번에 먹지 않고, 먹더라도 꼭 후식까지 챙겨 먹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우울증 약과 불안 약을 처방받아서 충동을 조절 중이다. 

이토록 사람에 대한 공부 없이 사람을 대하는 일은 종종 깊은 상처를 남긴다. 누가 나에게 힘들다고 말하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도 오늘은 사람 공부. 사랑의 이해 속에서 번듯한 옷 입고 당신 좋아한다고 백번 천번 입으로만 말하는 하상수보다는 말 없이 꼭 필요한 순간, 수영에게 데일밴드를 건네주던 종현처럼. 마음을 알맞게 쓸테다. 이제 몇 달 본 남의 인생 쓸데없이 구원해주겠다고 달려들지 말고, 꼭 필요한 순간에 말없이 위로해주는 사람이 더 귀하다. 뭐 나중에는 하상수도 달라지긴 했지만.. 아 그건 문가영이라 가능한걸까.. 나 또 공능제에 구제불능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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