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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Dec 28. 2023

수제비와 주방

땡고추를 송송 썰어 멸치와 다시다를 넣은 육수에다 넣는다. 육수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김치국물을 듬뿍넣고 맛이 어우러지기를 기다린다. (우리 집의 수제비 방식이기도 하다.) 기다리는 동안 전날 찰지게 주물럭 댄 밀가루 반죽을 듬성듬성 떼어 팔팔 끓고 있는 육수로 퐁당 던져 넣는다. 그러면 이제 각각의 재료들이 서로 어울려 수제비가 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이때 옆 사람이 있다면 수제비가 다이빙하는 동안 튀게되는 육수의 양에 따라 애정의 척도(?)가 갈린다고 배웠다. (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통용되는 수동형 공격이라고들 하던데, 다들 웬만하면 착하게 삽시다.) 그러면 큰 솥단지에 끓인 수제비는 팔팔에서 보글 보글이 되어 이제 내 위장에 들어온다. 본가로 오는 날은 배를 채우는 시간이다.


서울에서 혼자 지낼 때도 음식을 먹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먹는 양과 빈도를 따지자면 본가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먹고 있다.


그러나 밥과 인스턴트와 커피와 술은 비교할 수 없다.


혼자 지낼 때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이건 타인이건 음식이건 물건이건 향취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기본적으로 주방과 친한 성격은 안 된다는 것.


평일에는 주로 내 한몫 챙기기도 바빠서 요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상하게 또래 여자애들과는 다르게 주방에 대한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주방에 대한 궁금증도, 욕심도 없어서 냉장고 문을 3개월 동안 열어보지 못한 적도 있으니 (냉장고라도 열어봐야 뭐가 필요한 지 알 것 아닌가.) 말 다한 것 아닌가. 뭐가 됐든지 관심 있는 것이 아니면 끝까지 애틋하게 다듬고 볶아내고 기억하는 데는 영 소질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혼자 있을 때는 주로 커피와 샌드위치와 술처럼 손에 잡히기 쉽고 금방 버리기 쉬운 편의성만 찾는다. 내가 입에 댄 것들을 빨리빨리 눈앞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고시원의 공용주방은 시설이 잘 되어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선뜻 접근하기 어렵다. 게다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하수구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남긴 돼지고기 썩어가는 악취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누릿한 냄새를 풍기는 생활 쓰레기 냄새도 같이 맡은 날 방으로 돌아와 변기를 잡고 구역질했던 기억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주방이 되었다. 주방이라는 시설을 그저 스쳐 지나가니, 그것도 여러 사람들이 그러다 보니 쓰레기와 음식이 쌓여가는 음식은 보기에 되게 그로테스크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항상 보았던 악취를 풍기지 않는 주방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정돈됨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밥을 먹고 자랐다. 그것도 모르고 반찬 투정하고 누군가 정성스레 차려놓은 밥 앞에서 하리보 젤리를 보란 듯이 씹어대던 과거의 내 모습들은 항상 본가에 와서 먹는 첫 밥을 먹으며 알아차린다.


 오늘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창원역에 도착하여 점심때 도착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제비를 먹으면서 글을 구상하고 쓴다 제법 손을 움직이다 보니 소화가 잘 되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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