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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Sep 03. 2021

여름을 보내면서 쓰는 글

여름에는 얼굴이 있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여름을 좋아한 것 말이다.

여름과 친해진 건 2019년부터다. 입사와 동시에 큰 전환점을 가질 수 있었던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취향이 바뀐 것이니까, 언제부터 여름을 향한 짝사랑이 시작되었는지. 나는 이것만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어느 여름날 얼떨결에 시작했던 새벽 산책 덕분이었다책으로 비유하자면 내용의 전문은 될 수 없더라도 서문정도는 되는.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내 나름대로 일생일대의 큰 사건을 겪어내는 중이었고, 진통이심했다. 매번 집에서 응급 처치하듯 상처를 꼬매고 있었지만 완전히 낫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내 딴엔 그게 산책인 모양이었다. 그냥, 나무가 보고 싶었다. 여름날 억센 비를 맞고 난 다음 날의 나무들을.


고민만 하다가 산책이 하고 싶어 져서 이불에서 벌떡 일어나, 흰색 캐주얼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바짝 올려 쓴 채로 안개에 둘러싸인 동네 골목을 온종일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글을 쓰는 지금처럼 한참 초록이 자라고 있는 유월이었다. 그 해의 유월도 오늘처럼 날씨가 흐렸고 비가 계속 내렸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그 후로 여름이 오면 장마나 먹구름 끼는 흐린 날이 보통보다 길게 이어지는 것 같다. 아니면 습하기만 해서 짜증을 있는 대로 내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내가 아직도 19년의 여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걸까?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길어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은 내 착각일 뿐일까. 하지만 여름의 절정은 모두 그 강한 햇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나.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살아가면서 배우면서도 아쉬운 건 아쉽다. 마음을 비우려고 하지만 항상 먹구름만을 내어주면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아무튼 그때 본 여름은 내게 선물과도 같았다. 푸릇푸릇 자라나는 생명을 보고 맘이 찡해졌으니 무엇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꽃망울을 터트리고 져버린 꽃들과 터지기 일보직전인 꽃들을 보며 마음속 멍울도 함께 터지는 것 같았다. 여름과 마찬가지로 99퍼센트의 흐린 날을 보내던 시간에서 이제 막 맑은 날을 맞이한 것이 더없이 기뻤다. 그 후로 나는 무엇이든 오랫동안 미워할 수가 없다. 흐린 날 뒤의 맑게 갠 여름은 더할 나위 없이 멋졌으니까. 경험을 해봤으니까. 뭐든 좋지 않은 일이나, 내 기복 심한 감정도 그렇게 딱 하루라도 맑게 개일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러면 드디어 바깥으로 나설 수 있게 되니까.



모두가 그럴 테지만. 나뿐만 아니라 그런 날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가 넘쳐나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각자 미처 걷지 못한 먹구름이나 안개는 마음속에 남겨 둘 테지만.



‘맑게 갠 순간’의 기쁨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지금 딱 ‘현재’의 순간이 담겨있다. 아마 여름을 걷는 나의 표정에도 순간을 즐기는 기쁨이 담겨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것이 내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이자, 여름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다. 물놀이, 땀, 바다 같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여름을 보내는 각자의 얼굴로 여름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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