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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ly gl grim Mar 29. 2018

채식주의자

소설책 리뷰 - 한강作

 이번 여행은 제주도로 떠났다.

나는 제주도를 자주 가는 편이다. 한창 꽃다울 때 먼저 간 친구가 제주도에 묻히게 된 후부터 자주 찾고 있다. 그 이후로 더 반갑고 익숙한 곳이 되어 버렸다. 


제주도 여행은 날씨 탓에 힘들다.

한반도 최남단이다 보니 일기예보에 찍힌 온도는 항상 따듯할 것 같지만 바람이 세고 비가 변덕스러워서 제주의 동절기는 만만하지 않다.


이번 여행은 3월 중하순이라 다니기 좋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고 여행 바로 전날의 서울 기온은 21도까지 올랐었다. 제주에 도착한 당일에도 훈훈한 바람이 불었고 택시기사도 오늘은 24도까지 올라서 정말 날이 좋다고 했다. 옷은 당연히 얇게 준비했고 몸의 긴장도 풀려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부터 명성에 걸맞는 비바람과 매서운 일교차 덕분에 여행 중엔 감기몸살에 걸렸다.


둘째 날은 한경읍의 작은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바닷가 근처도 아닌 데다가 한껏 숙박용으로 지어진 건물도 아니었다. 키가 낮고 작은 돌담 마당이 딸린 제주 시골에 흔한 집이었는데, 날이 화창하면 분위기 좋은  겠지만 하필 내가 방문한 날은 잔뜩 흐렸고 구름이 껴 있었다. 그래도 고즈넉한 제주의 시골을 즐겨 보고자 원래 계획대로 의를 입고 마을을 산책했다. 안경에 맺힌 물방울도 좋고 동네 개들이 따라다니느라 풍기는 개 비린내가 나름 나쁘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축축 젖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일기예보는 8일이라는 긴 여행 동안 비 소식만 가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요맘때가 제주의 고사리 장마라던가..

숙소는 제주도에서 이런저런 소품을 만들어 파는  부부가 1일 1채만 민박을 놓는 곳이었다.

여기엔 자는 곳과 쉬고 놀 수 있는 라운지가 따로 있는데 이름이 라운지라고 해서 공항에 설치된 거창한 라운지는 아니고 두세 평 남짓한 공간에 판매하는 소품 전시와 본인들의 책들도 꽂혀 있는 작은 공간이다.


 나는 남의 집 구경을 좋아한다. 오래된 취미는 아닌데 갑자기 병적으로 좋아하게 되어서 친구가 이사하면 그 집이 어디에 있고 어떤 가구와 배치 그리고 소품을 했는지 그런 것들이 너무 궁금하고 재미있어 초대를 받으면 한동안 들떠 있곤 한다.  돈 내고 간 곳이지만 거기에 꽂혀 있는 다양하고 주인의 취향이 확실한 책들이 흥분되었다. 게다가 나는 일주일이 넘는 여행 동안 읽겠노라 생각한 책 3권을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왔다.


쏘잉싸롱 게스트하우스 라운지 책꽂이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눈에 띄었다. 매스컴에 떠들썩했던 맨 부커상 <정확히는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

이런 인기작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쉽지 않다. 나는 감히 예약하려 하거나 서가 위치를 검색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아니면 읽기 쉽지 않을 듯. 날씨도 축축한 마당에 딱히 할 것도 없는 데다가 하나로 마트에서 산 과자와 땅콩 막걸리도 있다.




 이전엔 한강이란 작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상도 타고 유명한 작가라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힘들기로 작정한 책들은 기겁하기 때문에 읽을 생각조차 못한 것도 있고 애초에 내 책 읽기는 편식이 심하다. 대체로 한국의 여류 작가들은 힘든 책을 많이 쓴다. 문단도 남초화 되어 있고 시대상을 그려보면 여성은 착취의 대상인 적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히 힘든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래도 여행 중이라 어느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소설은 충격적이다. 무라카미 류의 책도 어릴 때 많이 읽었고 10살 남짓 때 집에 꽂혀있던 마루타도 어린 맘에 충격적이었지만 30대 후반을 달리는 지금 이런저런 자극적인 콘텐츠에 많이 노출되어 애지 간한 것엔 심드렁한 내게도 <채식주의자>는 충격적이다.


소설은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개인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식물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나무가 되어가는 생장의 과정이기도 하다. 파괴와 성장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횡행한다.

(책은 3가지 챕터로 되어있고 같은 줄기의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끈다. 단행본 소설 <채식주의자>는 연작의 3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


아버지로부터 관습화 된 폭력과 강요에 대한 기억. 신체적 폭력이 아닌 인간적 대상으로서의 지위를 말살하는 남편의 폭력. 육식의 과정과 육식이라는 태도가 가지는 좀 더 근원의 폭력이 영가 가진 고통에  중첩되고 혼란으로 치닫는 챕터 1 <채식주의자>는 영혜가 채식만을 하기로 고집하며 극단적 채식을 통해 동물화를 부정하는 단계로 그려진다.

 챕터 2의 <몽고반점>에서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몽고반점에 성적, 예술적 욕망을 드러내는 형부가 영혜에게 그려내는 활짝 핀 꽃(식물의 성기)으로 인해 영혜는 형부와 교합하고 이를 알아챈 영혜의 언니(현실)는 자신의 남편과 동생을 정신병원에 신고한다. 여기서 영혜의 몸에 그려진 몽고반점은 어떤 씨앗으로 보이며 형부로 인해 발아하고 꽃이 된다.

식물이 된 영혜는 챕터 3의 나무 불꽃에서 언니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또 다른 폭력을 겪지만 결국 나무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영혜


그로테스크하고 자기 파괴가 가득한 소설을 읽고 나면 기나 긴 서평이 나온다. 소설만큼이나 창비판 <채식주의자>의 서평은 난해하다.



감정의 극한으로 치닫는 힘든 책을 좋아한다면 극단적인 구성과 내용을 가진 그리고 서늘할 만큼 간결한 문체의 훌륭한 책이지만 아무래도 여행하면서 읽지는 마시라.

장강명은 본인의 책<5년 만의 신혼일기>에서 여행 중 읽기 좋은 책은 난해하고 지루한 책이라고 했고 그 이유를 책이 지루한만큼 여행이 상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라고 했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라 여행중 읽으려고 빌려놓고 집 탁자에 두고 온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아쉬웠다. 나쓰메 소세키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겐 도무지 읽히지 않는 작가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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