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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ly gl grim Aug 05. 2019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나 건축가 구마 겐고

건축 서적 리뷰 - 안도타다오, 구마모토 겐지 지음

두 책세트는 아니다. 안그라픽스에서 나온 '나 건축가' 시리즈는 두 권뿐이다. 직접 제작한 책은 아니고 일본 자서전 원서를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건축은 르코르뷔지로 시작해서 르코르뷔지로 끝나는데 일본의 두 건축가도 기본적으로 그 그림자 속에서 움직인다. 따지고 보면 흙집이나 움집이 아니고서야 살아있는 현대 건축가가 르코르뷔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좌(르코르뷔지에가 연남동에 미친영향) , 우(르코르뷔지에가 경상북도에 미친영향) photo by daily gl grim
좌(안도타다오가 전라북도에 미친영향),  우(르코르뷔지에가 연희동에 미친영향) photo by daily gl grim



두 책은 연결되거나 연관이 없다. 나는 구마 겐고를 읽고 나서 안도 다다오를 읽었는데 안도 다다오야 워낙 유명한 건축가라 굳이 책으로 읽지 않더라도 미디어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은 것도 최근이라(심지어 대부분 비슷한 내용) 굳이 그 아저씨의 책을 또 읽어야 할까 생각이 들어 구마겐고를 먼저 읽은 것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읽는 순서가 좋지 않았다. -안도타다오를 읽고 구마겐고를 읽는 게 낫다-


구마겐고는 안도보다 후세대의 건축가인데 안도의 철학에 어느 정도 비판적인 생각과 발판을 삼아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 비판적 견지 때문에 후에 안도타다오를 읽는 중간중간 "구마겐고가 이건 이게 아니랬는데.. 구마겐고는 이걸 싫어하던데" 라면서 괜스레 구마겐고에게 동화돼버린다.


닫힌건축 열린건축?


보통 닫힌 건축이라 부르는 안도와 달리 구마겐고의 건축은 열려있다. 수명한계가 뚜렷한 재료와 물성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건축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생명력은 유한성과 죽음 도태 등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천년만년 존재하는 건축물은 생명력이 있는 건축물이라고 볼 수 없다라나?.. 한마디로 낡아서 기어코 죽고 마는 건축물이야 말로 살아있는 건축물이라고 주장한다. 천년만년 서있는 토템이나 랜드마크야 말로 비인간적이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안도타다오가 노출 콘크리트로서 비생물의 극한을 보여준다면 구마겐고의 건축은 건물의 쓸모에 맞게 수명을 조절하여 자연으로서 탄생하는 건축이다.


지나간 패러다임으로서의 모뉴먼트 건축


 한 달에 몇 차례 해외에 불 다니며 세계 곳곳에 네임드 있는 건물을 지어 대는 이 정도 이름 있는 건축가의 건축물은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부자들의 저택이나 거대한 쇼핑몰 혹은 비즈니스 타워가 아니고선 주변에서 만나기 힘들다.


구마겐고의 최근 작업만 보아도 본인의 입맛에 맞는 몇몇 실험적 작품을 제외하고선 아뜰리에에 개략적인 콘셉트만 전달하고 도면을 컨펌하는 정도로 본인의 역할을 다 한다.


가장 최근에 본 건축 서적에서 일본의 신진 건축가는 안도타다오와 구마겐고를 싸잡아 현실과 괴리가 있고 오로지 부자들과 권력 입맛에 따라다니는 자신들만의 기념비에만 관심 있는 과대 망상가로 표현하고 있다.


로컬화 되지 않은 건축물은 신선한 충격으로 그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흉물로써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국내에도 지금은 작고한 자하 하디드의 DDP나 라파엘 비뇰리의 종로타워는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으면서도 그 지역의 인상을 담당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땅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지 않고 욕망만 투영된 이들 건축물을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미 그 자체로  자화상이 된다고 본다.


건축은 생물이다.


건축만큼 다양한 전문분야의 아이디어와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 또 있을까? 욕망이 투영된 과대망상건축도 건축이고 인문학적인 고찰에 의해 건축주의 니즈를 확실하게 품어내면서도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이상적인 건축도 물론 건축이다.


수많은 건축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도시의 모습이 다르고 개별 건축물의 모습이 다르다. 도면까지 그려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건축주의 열정을 칭찬하는 건축가가 있는가 하면 그런 행위를 자신의 선입견에 빠지게 하여 올바른 설계 행위를 방해하는 행위 1순위로 정의하는 건축가도 존재한다.


집값이 오르고 거래가 많아지면 헌 집을 사다 새로 짓거나 고치는 일이 많아진다. 물론 이런 시기엔 빌라나 원룸 고시원 박스형 상가까지 이익만을 생각한 건축물도 많아지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덩달아 많아진다.

두 건축가는 작가주의 건축을 하지만 본인들의 철학에 따라 도시와 건축을 짓는다.

건축은 하나의 이상을 설파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기도 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부딪친다. 천편일률적인 사용성의 건축만 계속되던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삶의 방식이 갈라져나가며 새로운 건축을 요구하고 있다.

덕분에 좋은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지는 요즈음 마치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빨간 벽돌집에도 언젠가 재미있는 독립 영화 같은 건축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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