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겨울, 바다가 건네는 단맛
여름이 성급하게 떠난 자리, 찬 바람이 바다를 두드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문득 생각나는 생선이 있다. 학꽁치. 고요한 겨울 바다를 가르며 온 듯한 그 투명한 살결은,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조심스럽고 또 정겹다.
누군가는 이 생선을 ‘겨울의 진객’이라 부르기도 한다. 요란스럽지 않지만, 제 맛을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온 생선이다.
처음 학꽁치를 봤을 때, 그 뾰족한 아래턱이 마치 학의 부리 같아 한참을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은빛 비늘이 햇빛에 반짝일 때면 마치 얼음 결정처럼 투명하고 깨끗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 때문일까.
이 생선은 찬 바다에서 더욱 깊고 단단해진다. 특히 겨울철이면 그 육질은 단단하게 올라, 회로 썰었을 때 입안에서 은은한 단맛이 퍼지는 느낌이 무척 인상적이다.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감칠맛은 마치 겨울 바다의 속삭임처럼 조용히 스며든다.
한때는 어부들조차 무심히 넘기곤 했던 학꽁치.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잘 보관된 학꽁치는 계절을 넘어 사랑받는다. 특히 일본에서는 ‘사요리’라 불리며 봄 스시의 고급 재료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만큼 섬세한 맛을 아는 사람들이 애정하는 식재료다. 얇고 부드러운 가시 덕분에 세꼬시로도 즐기기 좋고, 불에 구우면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진다.
그 특유의 담백함은 굵은 소금 하나면 충분히 살아난다. 가끔은 무와 대파를 넉넉히 썰어 넣고 끓인 국물 요리로도 학꽁치를 즐긴다.
소금간만으로도 깊은 맛이 나는데, 예전 바다 위에서 어부들이 즉석에서 끓여 먹던 방식 그대로다. 그런 투박한 조리법이 오히려 그 본래의 맛을 가장 잘 드러내는 듯하다.
하지만 학꽁치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 생선이 아니다. 그만큼 까다롭고, 예민하다. 조금만 신선도가 떨어져도 육질이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이 생선을 식탁에 올렸다는 건, 그 자체로 좋은 재료를 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르려면 눈이 맑고 윤기 도는 것을, 주둥이가 온전히 붙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비늘을 깨끗이 긁어내고 내장을 정성스레 제거한 뒤에도, 살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지만, 그렇게 다룬 학꽁치는 정말 특별한 맛을 선물해 준다.
학꽁치는 어쩌면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섬세한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느냐고. 자연이 주는 그 순수한 맛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일 수 있느냐고.
그래서 이 겨울, 학꽁치를 다시 떠올려본다. 투명한 그 살 안에 담긴 단맛은, 아무렇게나 다가가지 못하는 조심스러운 아름다움 같다. 오늘 저녁엔 그 섬세함을 조용히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