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속 그 ‘꼴뚜기’, 선비들의 밥상에 오른 귀한 존재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머릿속엔 어딘가 볼품없고 눈치 없는 작은 해산물이 떠오른다. 멸치볶음 사이사이에서 우연히 튀어나오는 그 꼴뚜기.
그러나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그 작은 생물은, 사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귀하게 여긴 ‘바다의 신사’였다. 다 자라야 손가락 한 마디 남짓한 몸집이지만, 꼴뚜기 안에는 풍부한 감칠맛과 정직한 영양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꼴뚜기를 ‘고록어’라 부르며, 높은 녹봉을 받는 귀한 생선으로 평가했다.
바닷속에서 나는 작은 고기, 그 이름에는 그 시대의 식자들이 느꼈던 존중과 미식의 감각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꼴뚜기는 오징어과지만, 먼 바다를 떠도는 오징어와 달리 연안에 머무는 탓에 근육이 덜 발달되어 육질이 무척 부드럽다.
그래서인지 제주나 남해안처럼 신선한 꼴뚜기를 바로 손질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회로 즐기는 이들이 많다. 오독오독 터지는 식감과 함께 퍼지는 고소한 맛은 한 번 맛보면 잊기 어렵다.
회가 조금 부담스럽다면, 살짝 데친 숙회도 좋다. 나는 어릴 적, 할머니가 초장에 무친 꼴뚜기를 숟가락에 툭 얹어 주시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입 안에 맴돌던 그 고소함은 참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꼴뚜기의 진가는 국물 요리에서 더욱 빛난다. 찌개나 라면에 말린 꼴뚜기 몇 마리만 넣어도 국물 맛이 훨씬 더 깊고 시원해진다.
80~90년대 라면 스프 안에 말린 꼴뚜기가 들어 있던 것도 이 감칠맛 때문이었다. 젓갈로도, 볶음 반찬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그 모든 활용의 밑바탕에는 이 작은 해산물의 숨은 맛이 자리한다.
영양 면에서도 꼴뚜기는 꽤 매력적인 식재료다. 타우린과 철분이 풍부하고, 저지방 고단백이라 건강을 챙기기에도 부담이 없다.
다만 바다에서 자란 연체동물답게 기본적으로 나트륨 함량이 높은 편이기에, 국물 요리나 짭조름한 음식과 함께할 땐 간 조절에 조금 신경 써야 한다.
이렇듯 작고 소박해 보이는 꼴뚜기 안에는 역사와 미식, 건강과 지혜가 함께 담겨 있다. 속담 속 오명에만 갇혀 있던 이 작은 바다 생물을, 이제는 다시 바라볼 때다.
아마 다음번에 멸치볶음 속에서 꼴뚜기 한 마리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작지만 귀한 이 꼴뚜기의 맛을, 다시 음미해보는 하루가 되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