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들판의 보랏빛 선물, 하고초라는 이름의 꿀풀
햇살 좋은 날, 길가 풀밭에서 우연히 마주한 보랏빛 꽃송이 하나. 앙증맞게 모여 핀 그 모습에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면, 아마 당신은 하고초를 본 것이다.
입에 살짝 물면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 덕분에 '꿀풀'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지만, 여름이 되면 시들어 마른다는 뜻의 '하고초(夏枯草)'라는 이름도 이 식물의 한 얼굴이다.
꽃이 저물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약성이 오르기 시작하는 이 풀은, 작지만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살아온 여름 약초다.
이른 봄에는 쓴맛과 매운맛이 살아 있는 나물로 자라난다. 갓 돋아난 어린 순은 데쳐서 충분히 우려낸 뒤 된장이나 고추장에 조물조물 무치면 특유의 풍미가 살아난다.
된장국에 넣어 구수하게 끓여내면 쌉싸름한 봄의 기운이 국물 속에 녹아든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 쓰임새는 또 달라진다.
깨끗이 씻은 꿀풀꽃은 샐러드에 흩뿌려도 좋고, 찹쌀가루 반죽 위에 얹어 화전으로 구워내면 입은 물론 눈도 즐거워진다. 꽃이삭을 우린 물로 식혜를 담그면 은은한 꿀향이 감도는 특별한 단맛도 즐길 수 있다.
햇볕에 잘 말린 꿀풀은 차로 우리기에도 제격인데, 더위에 지친 몸에 조용히 스며드는 맛이 참 좋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하고초의 효능을 높이 평가해 왔다.
동의보감》에도 실려 있을 만큼 열을 내려주고 눈을 밝게 하며 간의 기운을 다스린다 하여, 임파선염이나 고혈압, 안구 질환 등에 쓰였다고 한다.
요즘 들어서는 로즈마린산과 우르솔산 같은 항염·항산화 성분들이 그 효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여름철 눈이 뻑뻑하거나 머리가 무거운 날, 하고초차 한 잔은 자연이 건네는 작은 위로처럼 다가온다.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 꿀풀은 우리가 흔히 쓰는 바질, 민트, 깻잎과 같은 꿀풀과 식물에 속하기 때문에, 해당 허브류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약성이 있는 만큼 과한 섭취는 소화기 불편을 유발할 수 있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저 들꽃인 줄 알았던 꿀풀은 이렇게 나물로, 꽃차로, 약초로 다채로운 얼굴을 품고 있다. 여름 한낮 들판을 수놓는 보랏빛 작은 꽃 한 송이에도, 자연은 우리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은 그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하고초, 그 작고 조용한 여름의 선물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