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름한 추억의 별미, 왜 못 먹게 됐을까?

사라진 나물이 전해주는 자연의 메시지

by 데일리한상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남쪽 지방의 봄 식탁에는 꼭 빠지지 않는 나물이 있었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 가득 번지던 쌉싸름하고 고소한 향, 바로 ‘합대나물’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가 갓 딴 합대나물을 데쳐 내오곤 하셨는데, 특유의 씁쓸한 맛이 입맛 없던 봄날을 깨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요즘은 시장에서도, 산기슭에서도 그 모습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한때는 봄의 신호처럼 우리 곁에 머물던 나물이 왜 이제는 추억 속의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을까.

hapdarinamu3.jpg 합다리나무 잎 / 푸드레시피

합대나물은 합다리나무의 어린 순이다. 이름의 유래가 참 정겹다. 매끈한 수피와 곧게 뻗은 가지가 마치 학의 다리를 닮았다 해서 ‘합다리나무’라 불린다고 한다.


전남과 경남 등 남부의 따뜻한 산자락에서 자라며, 여름이면 가지 끝마다 흰 꽃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숲을 환하게 밝히고, 가을에는 붉은 열매 주머니 속에 까만 씨앗을 품어내며 또 한 번 신비로운 장관을 보여준다.


그 열매는 새와 곤충에게 소중한 먹이가 되어 숲 생태계의 작은 한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합다리나무는 까다로운 나무다.

hapdarinamu1.jpg 합다리나무 / 국립생물자원관

무엇보다 공기와 흙이 깨끗해야만 살 수 있다. 대기오염에 너무나 취약해 산업화 이후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씨앗은 단단해 쉽게 발아하지도 않는다.


꺾꽂이로 번식하려 해도 성공률이 낮으니, 자연 속에서 저절로 늘어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염에 약하고, 번식은 더딘 탓에 결국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대나물의 맛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두릅처럼 연한 순을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특유의 쌉싸름함 뒤에 고소한 감칠맛이 번지며 봄 입맛을 단번에 깨운다.

hapdarinamu5.jpg 초고추장에 찍는 합다리나무 잎 / 푸드레시피

가끔은 된장에 무쳐 밥 반찬으로, 또 어떤 날은 바삭하게 튀겨내 아이들 간식으로도 올랐다. 장아찌로 담가두면 사시사철 밥상에 올릴 수 있었으니, 그 존재만으로도 집안의 계절이 풍성해졌다.


옛사람들은 합대나물이 소화와 이뇨에 좋다 하여 민간에서 종종 활용했다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산나물처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는 점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결국 나물은 약이 아니라, 계절의 선물처럼 조금씩 맛보는 데서 진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hapdarinamu4.jpg 합다리나무 잎 나물 / 푸드레시피

합다리나무의 사라짐은 단순히 한 가지 나물을 잃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보내는 조용한 신호에 가깝다.


더 이상 봄 식탁에서 만나지 못하는 쌉싸름한 그 맛은, 어쩌면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의 숨결을 일깨우는 기억의 맛일지도 모른다.


올해 봄에는 산나물을 집어 들며 잠시 멈춰 생각해 보자. 우리가 잊고 있는 자연의 목소리를, 그리고 지켜야 할 것들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나물·꽃차·화전까지! 활용도 끝없는 들풀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