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 한 숟갈이 달라진다”… 제철 해산물 배말
여름의 끝자락, 문득 바다 냄새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땐 바위틈에 꼭 붙어 제 자리를 지키던 작은 생명체, 배말이 생각난다.
겉으로는 전복을 쏙 빼닮은 이 작고 단단한 해산물은, 알고 보면 그 어떤 고급 식재료보다 깊은 맛과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배말은 ‘삿갓조개’라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조개가 아니라 소라나 고둥처럼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집을 가진 복족류다. 바위에 딱 붙은 채 살아가는 이 작은 생물의 생존 비결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 이빨에 있다.
‘침철석’이라는 철 성분이 들어 있어 바위까지 긁어낼 수 있을 만큼 강한 치아를 지녔다니, 자연은 늘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래서일까.
바닷가에서 배말을 채취할 땐 맨손으론 어림도 없다. 얇고 날카로운 도구를 틈새에 넣어야만, 그 조그만 껍데기를 겨우 떼어낼 수 있다.
조리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문질러 깨끗이 씻은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껍질 속 붉은 살이 톡 하고 빠져나온다. 이 작디작은 살점이 바로 바다의 감칠맛을 응축한 보석 같은 존재다.
된장국에 몇 알만 넣어도 국물의 풍미가 완전히 달라지고, 평범한 라면에 넣으면 진짜 해물탕 같은 맛이 나니, 이쯤 되면 배말은 작은 전복이라 불릴 만도 하다.
남해안 쪽으로 내려가면 배말 칼국수가 또 하나의 별미다. 국물은 미역국 같기도 하고, 조개탕 같기도 한데, 뒷맛이 더 깊고 구수하다.
쫄깃한 배말 살이 칼국수 면발 사이사이 살아 움직이듯 어우러지고, 한입 떠먹을 때마다 여름 바다가 입 안 가득 퍼지는 기분이 든다.
개운한 초고추장에 버무려 오이나 부추와 함께 무쳐 먹으면 입맛이 뚝 떨어진 날에도 밥 한 그릇은 금세 비워지기 마련이다. 살짝 데쳐낸 배말은 밀봉해 냉동해두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으니, 한 번쯤 넉넉히 손질해두는 것도 좋겠다.
영양 면에서도 배말은 작지만 든든한 존재다.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라 다이어트 중이거나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제격이고, 항산화 작용을 돕는 셀레늄, 오메가-3 같은 영양소도 풍부하다.
다만 감칠맛의 주범인 퓨린 함량이 높아 통풍이 있거나 요산 수치가 높은 이들은 섭취를 조심해야 한다. 또 드물게 해산물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도 있으니 처음 먹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천천히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
배말은 그저 작은 해산물이 아니다. 거센 파도와 바위틈을 이겨내고 살아온 바다의 단단한 숨결이자, 우리가 쉽게 지나쳐왔던 자연의 깊은 맛이다.
된장국 한 숟갈이 특별해지는 그 순간, 배말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오늘은 그 바다의 작은 전복을 식탁 위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한입의 감칠맛이, 여름을 오래 기억하게 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