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이 컸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나서 꽤 오랫동안 의욕이 돌아오지 않았다. 스스로 맨 땅에 헤딩을 하며 열심히 임했던 것치고는 너무나 허무하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버렸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중요한 일을 한 것이라 나를 위로 했지만 언제 다시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괜시리 더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나를 또 방으로 불렀다.
사장님은 회사의 브랜딩을 다시 하고 싶다며 로고와 웹사이트의 디자인 및 콘텍스(context)적인 것은 물론 클라이언트들이나 잠재 고객들에게 보여줄 데모 비디오 또한 제작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는 나에게 총 3가지를 부탁했는데 그것은
1. 새로운 로고를 제작할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찾아 요청
2. 인하우스(in-house) 리드 개발자와 협업하여 웹사이트의 리빌딩
3. 데모 영상 제작
"I don't know how to edit videos" 저 영상 만질 줄 몰라요...
나의 대답을 듣고 사장님은 이렇게 답했다.
"You are smart. You will be able to learn and create one. Just give it a shot" 넌 똑똑하잖아. 분명 배우고 만들 수 있을거야. 한 번 해봐.
지금 생각하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챌린지를 줄 때 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나를 보며, 얘는 시키면 하겠구나라고. 그게 아니라면 정말 단순히 영상 제작에 사용될 돈을 아낀 것일 수 있겠지만..
결국 또 나는 저 말에 홀려서 Adobe Premiere Pro(어도비 프리미어프로)와 AfterEffect(에프터이펙트)를 다운 받고 유튜브를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 때 당시 참고하던 유튜버들은 하줜님과 편집하는 여자님이었는데, 무작정 그들의 튜토리얼들을 따라했고, 여러 영상들을 참고하면서 편집감을 익혔다. 그러는 동시에 나는 웹사이트 리빌딩과 로고 디자이너를 찾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을 함께 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가 나의 커리어 생활에서 다가온 퀀텀 점프의 시기였다.
회사에 입사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았을 때, 정신없이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해야했기 때문에 그 때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는 법과 협업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스킬적인 면에서도 큰 성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영상 편집 기술을 처음으로 익혔고, 바쁜 개발자가 웹사이트의 틀만 만들어놓고, '여기서 부터는 이렇게 이렇게 너가 하면 될꺼야!'를 시전했기 때문에 HTML과 CSS도 함께 익혔다.
어쩌다보니 웹사이트 관리까지 내가 맡았기 때문에 더욱 더 바빴졌지만, 그게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내가 중요한 일원이 된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장장 3개월에 걸쳐 웹사이트와 데모 영상들을 완성시켰다. 런칭된 사이트와 영상을 보고 있자니 매우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과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공식화된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