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ummer

EP01.영포자의 영어 완전 정복기

영포자에서 영주권까지, 끝없이 나를 찾는 여정

by 키미


나는 자타공인 "영포자"다. 초등학교 시절 알파벳을 배울때부터 영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해 문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예 벽에 부딪혔다. 까만건 글자요, 흰 건 종이일 뿐이었다. 읽을 수는 있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기 힘들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예 영어를 손에서 놔버렸고, 결국 수능에서 처참하게 죽을 쒔다. 정시로는 도저히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없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수시납치로 지방의 국립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황새(친구)들 따라가느라 뱁새(나)의 다리는 찢어질 뻔했다. 4학년이 되어 졸업을 하려니 토익점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이과생이라 고득점은 요구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장벽이었다. 영어학원을 두 달이나 다니며 토익 공부를 했지만, 시험결과는 처참했다. 토익 책과 시름했지만 기게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은 나와 전혀 맞지 않앗다. 문제를 풀기는 커녕 영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졌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토익학원을 그만두고, “문법보다는 회화 실력이 늘면 토익 점수도 자연스럽게 오르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집 근처 영어 회화학원에 등록햇다. 레벨 테스트를 받은 뒤, 한국인 선생님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반에 들어갔다. 확실히 이 방식이 나에게 훨씬 잘 맞았다. 6명 정도의 소규모 수업이라 참여도가 높았고, 문법 설명도 최소한으로만 다뤘다. 무엇보다 회화 위주로 진행돼서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사라졌다. 이 시기에 내 영어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담당 선생님께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 실력을 평가해 다른 레벨의 수업으로 추천해주었고, 나는 새로운 반으로 옮겼다. 하지만 새로운 선생님들의 수업방식은 나와는 맞지 않았고, 흥미도 떨어졌다. 결국 학원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소셜미디어에서 광고를 자주 보던 학교 근처의 학원에 등록했다. 다녀보니 수업방식과 선생님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하루에 총 두시간 반 수업이었는데, 한시간 반은 한국인 선생님과 한국어로 영어수업을 하고 나머지 한시간은 원어민 선생님과 한시간 반동안 배운 내용을 토대로 영어로 회화수업이 진행되었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었다. 문법과 회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나는 원래 압박감이 있는 환경 아래에서는 무언가를 잘 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내일까지 레시피 5개를 외워오세요. 라던지 테스트 할거니까 영어단어 100개를 다음주까지 외워오세요. 같은.. 대부분의 한국 교육과정이 그랬듯 1+1은 2니까 외우세요. 같은 것들도 늘 왜? 라는 의문점이 있었다. (배웠는데 기억 못할수도..) 나에게는 영어도 그랬다. 전치사, 부사, 접속사 등 '-사' 라는 법칙들이 어렵게 다가왔고 왜 그런지 이해를 못하니 당연히 영어점수는 바닥을 기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영어실력은 'I eat dinner' 정도였다.


이 때, 문득 학교 선배가 흘리듯 말했던 '영어카페'가 떠올랐다. 학원과 병행해 다녀보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앗다. 무턱대고 등록했는데, 이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 영어카페는 외국인 친구들이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한국인 회원들과 영어로 대화해주는 곳이었다. 주말에는 거기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클럽, 술집, 관광지 등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영어 실력은 물론, 자신감까지 급상승했다.


외국인 친구들과 말 하며 늘 틀릴까봐 조마조마했던 내 뇌속의 영어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그 친구들은 틀려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너 영어 잘 한다! 나는 영어밖에 못하잖아. 그런데 너는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하니까 얼마나 멋진 일이니?' 혹은 '이런 상황에는 그 단어말고 다른 단어도 쓸 수 있어.' 라고 하며 도움을 줬다.


세 달 정도 영어카페와 학원을 병행한 뒤, 다시 토익 시험을 쳤다. 비록 고득점은 아니었지만, 졸업에 필요한 점수는 충분히 받았다. 결국 1년의 졸업유보 끝에 무사히 학사모를 쓸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영어카페에서 만난 한 한국인 친구가 무심히 던진 말이 내 인생을 바꿔놨다. "나 캐나다 워홀 가는데 너도 한번 도전해봐." 그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 "영어회화 쎄빠지게 배웠는데 한국에서만 써먹는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써야 할 환경에서 살아보자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영포자였던 내가 캐나다 워홀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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