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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6.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연습

영포자에서 영주권까지, 끝없이 나를 찾는 여정

by 키미

"남들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 한국에 살면서 수도 없이 생각했던 말이다. 하지만 막상 나를 눈치보게 만든건 남들이 아니라, 그런 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나 자신이었다는걸,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늘 조심스러웠다. 뭘 하든 정답이 있는 것 같았고, 그 정답에서 벗어나면 금방이라도 뒤처질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하고, 그 다음은 결혼, 그리고 아이, 집, 차... 마치 게임처럼 퀘스트를 깨야만 하는 인생 같았다. 내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까, 나도 멈추면 안되는 줄 알았다.


그랬던 내가 캐나다에 오고,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달라진 게 없었다. 영어도 잘 하지 못했고, 일을 하며 실수를 할까봐 오히려 더 움츠러 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나를 아무도 평가하지 않았다. 서툰 영어를 쓰고, 일하다 실수를 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다들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하지만 점점 그 자유로움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누구도 나를 '나이순'으로 판단하지 않고, 외모나 직업으로 가치를 매기지 않는 사회. 그 속에서 나도 나를 덜 판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보다 외모집착도 줄었고, '이 나이에 이건 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사라졌다. 지금은 나의 속도에 집중하며, 조금 느려도 나쁠 거 없다고, 가끔은 멈춰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아니면 말고' 캐나다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내가 제일 자주하는 말이다. 뭔가를 시도해보다 안되면, 다음기회에 하면 된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타인의 기대에 억지로 부응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다 보니, 여유가 생기며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없었던 여유로움을 느낄때마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고는 했지만, 잠깐 지나가는 생각에 지나치곤 했다.


한국을 떠날 땐,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한국 보다는 낫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나는 예상보다 더 큰 걸 얻었다. 바로 '진짜 나' 였다.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이런 나를 찾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곳의 삶이 언제나 쉽고 자유롭고 여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한가지는, 나는 여기서 내 속도와 리듬을 찾았다. 이제는 조급하지 않은 내가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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