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자에서 영주권까지, 끝없이 나를 찾는 여정
‘레이오프’라는 단어는 내 인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줄 알았다.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성인이 된 이후 나는 늘 무언가 일을 하며 살았고, 일을 쉬는 시간도 항상 내 의지로 만든 공백기였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결정으로 일을 그만둔 적은 없었다.
레이오프는 한국의 '해고'와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규모를 축소해야 하거나, 프로젝트가 종료되어 팀이 해산될 때 ‘레이오프’라는 표현을 쓴다. 나 역시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로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레이오프를 당하게 되었다.
그 후 약 두 달째,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북미 복지국가답게 의료비는 무료이지만, 실업급여는 말 그대로 '죽지 않을 만큼'만 주어진다. 그나마도 렌트와 기본 생활비를 제하면 손에 남는 건 거의 없다. 세이빙은 꿈도 꿀 수 없다.
열심히 일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도 해왔다. 그런데 레이오프 직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뭐 먹고 살지?"였다. 기존 회사에서 2년이나 일했지만, 당장 수입이 끊긴다는 생각에 막막함이 몰려왔다. 캐나다는 자발적인 퇴사나 징계 해고가 아닌, 타의에 의한 퇴사일 경우에만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예를 들어 레이오프, 육아휴직, 출산휴직, 병가 등이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나와는 조금 달라졌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겪었던 언어 장벽, 문화 차이를 하나하나 극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쩌면 이 시간이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 나이에 어떻게 새 직장을 구하지?’라는 생각에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내가 원하고,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 그 '얻을 수 있는 것'을 찾는 중이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잡생각이 늘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분야가 맞는 건지, 다른 분야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닌지 자꾸만 생각이 많아진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요즘,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레이오프 후 약 두 달 동안 몇 군데 회사에 지원도 해봤다. 그러나 고용시장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고,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학기부터는 학교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학교 커리어센터(학생들의 이력서, 커버레터 등을 도와주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나의 네트워킹 능력, 리더십 스킬, 퍼블릭 스피킹 스킬을 키워나가고 싶다.
학교에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다행히 실업급여를 받고 있어 당장 금전적인 부담은 크지 않다. 앞으로는 학교 공부와 커리어센터 봉사활동을 병행하며, 다시 고용시장에 나설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이다.
나와 남자친구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This is not the end of the world."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도 방법이다. 거창한 시작은 아니지만, 천천히 발전하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