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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를주는이 May 13. 2022

딸이 시를 읽었습니다

스트릿댄서가 꿈인 딸_시가 주는 위로[묵화_김종삼]

⁠딸이 시를 읽었습니다

책이라고는 잘 보지 않던 딸이

어느 날 시를 읽었습니다

물 먹던 소의 목덜미에 얹은

할머니의 손과 하루를 함께 지났다는

그 말과 발잔등이 부었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했습니다

무엇이 딸의 눈물을 자극했는지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딸은 이 시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시집을 늘 가방에 넣어 다닌다고 했습니다

꿈을 향한 그 과정이 힘들고 외로웠던 딸의

마음에 누군가의 짧은 시 한 구절이

위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묵화(墨畫)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혔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중학교 2학년인 의 꿈은 스트릿댄서가 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처음으로 댄스 학원을 보냈습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딸이 댄스에 관심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그냥 취미 삼아 보낸 것이 지금은 꿈이 돼버렸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다니던 학원 수업을 전문반으로 변경하여 매일 학원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주말에는 수업 없었지만 연습하러 또 학원에 나갔습니다. 마냥 신이 나 보이던 딸이 어느 날 근육과 관절이 자주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성장기에 너무 무리하게 몸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 통증의 신호가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당히 쉬어 가면서 하라고 했지만 그 열정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 여러 장르의 춤을 배우는 동안 자신이 잘할 수 있고  더 좋아하는 장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딸의  얘기만으로는  스트릿댄스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해서  딸과 함께 TV 프로그램인 스우파(스트릿 우먼 이터)와 스걸파(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를 다시 보기로 시청했습니다. 여러 크루들의 춤을 보면서 눈을 반짝이며 설명해 주는 딸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댄서들의 표정도 춤을 추는 그 순간은 정말 행복해 보였지요. 중간중간 그들의 이야기는 또 감동을 전해 주었습니다. 마냥 쉽지 만은 않았던 댄서의 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봐 주지도 않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온 댄서들의 눈물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나니 걱정이 더 많아졌습니다. 딸의 꿈을 마냥 응원해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댄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현실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줄만 알았던 딸은 꿈을 정하고 나니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말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다른 쪽으로 꿈을 꿀 수 있도록  딸의 얘기에 자그마한 여지를 보일 때마다 그쪽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회유 아닌 회유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지요.


중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락킹과 힙합 장르를 더 배우고 싶다며 동네 학원이 아닌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는 타 도시 학원에 다니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아직 내 눈에는 어린애 같아서 혼자서 다닐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몇 달을 고민하다 딸과 함께 새로운 학원에 결국 등록을 했습니다. 매일 가고 싶다는 딸을 설득하여 일주일에 3번만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교 후 5시가 되면 타 지역으로 왕복 4시간을 달려 2시간의 수업을 밤 11시 30분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른들도 힘든 평일 밤의 여정에 딸은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습니다.


 저녁밥을 못 챙겨 먹는 것이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집에 오면 밤 11시 30분.. 그때에 저녁을 먹곤 했지요. 이제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몸살이 났습니다. 일주일을 쉬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빨리 학원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딸을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저렇게도 좋을까..


어느 날 오후.. 근무 중이었던 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딸이었습니다. 뭔가 굉장히 들떠 있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시를 읽게 되었는데 너무 감동적이고 좋아서 하교하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집을 꼭 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는 김종삼 시인의 「묵화」라는 시였습니다.  몇 줄 되지 않은  짧은 시였지만 딸에게 왜 감동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딸이 학원에 다녀오는 날엔 항상 발잔등과 발목이 부어서 아침에는 없던 양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딸아이 성격상 대충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지 발등 난 양말 자국이 말해 주곤 했지요.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이 구절에서 마음이 울컥한 모양이었습니다. 시를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좋아서.. 그리고 꿈이기에 힘들어도 기쁘게 다니긴 했지만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걱정할까 봐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어린 나이지만 감당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잘 익은 석류의 껍질이 작은 외력에도 툭 하고 터져 빨간 석류알이 삐져나오는 것처럼 「묵화」라는 이 시가 아이의 마음을 툭 하고 건드렸나 봅니다. 그래서 도저히 감출 수 없어 삐져나오는 석류알처럼 눈물이 흘렀나 봅니다.


그동안 온전히 응원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여전히 아직 어리니까 언젠가 꿈을 바꿀 수도 있겠지라는 여지를 남겨 두어서 미안했습니다. 주변에 친지들도 댄서에 대해 별로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늘 미래에 대한 걱정 어린 말뿐이고  아이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딸도 말은 안 했지만 주변의 반응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시가 알아주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났을 것입니다.

 

앞으로 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으로 딸이 걸어 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운 길 홀로 가도 외롭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인생이 꿈을 꾸고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딸에게 긍정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의 꿈을 온전히 응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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