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잔디 썰매

동심의 추억 속으로

by 연아

눈이 잘 오지 않는

어느 바닷가 마을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얕은 바다 위에선 차가운 물비늘만

바람에 일렁입니다


눈이 보고픈 아이들의

푸념과 간절한 기도는

매일 밤마다 몇 안 남은

감나무 이파리를 흔들고


차가운 새벽하늘에 동이 트면

집집마다 아이들의 표정은

한숨과 실망을 먹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내리지 않는 눈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누렇게 새어 버린

뒷동산 풀 잔디만이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바람에 짧게 흔들립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한 아이는 널빤지를 가져다가

초 칠을 합니다


한 아이

한 아이

어느새 각자 널빤지로

멋들어진 썰매를 만들고


너나 할 것 없이 새어 버린

풀 잔디 언덕에 올라 널빤지를 깔고

썰매를 타기 시작합니다


타면 탈수록

초 칠한 널빤지는 더욱

미끄러워 속도가 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은

바다를 건너고

차가운 하늘을 뚫습니다


널빤지를 잡다가

손가시가 박혀도


매섭게 부는 겨울바람이

손등을 갈라놓아도


풀 잔디 썰매의 즐거움은

하루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눈이 오지 않아 실망한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밝아졌습니다


눈을 기다렸던 간절한 기도와

눈이 내리지 않아도 행복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던 풀 잔디 썰매의 추억


지금도 그곳엔


한겨울 눈 쌓인 언덕이 아닌

누렇게 새어 버린 풀 잔디들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담아

바람에 흔들리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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