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회사에서 리더의 자질을 찾다.
하이 브런치.
나다.
오랜만에 들어왔다.
그 동안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저 현생을 살기 바빴고 길게 내뱉고 싶은 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브런치를 등한시 했다.
그러다 문득, 망해가는 회사의 인사담당자로서 그리고 회사원으로서 '리더'의 부재로 인한 위기를 실감하며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 글은 그저 어떤 리더가 있으면 좋을지 이상을 그려보는 팔로워의 시각일 뿐임을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동시에 나름대로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 인사담당자의 시각일 수도 있다.
-
나는 말 그대로 망해가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등에 엎고 몇 년째 계속되는 적자와 늘어나는 인건비, 나오지 않는 신제품에 가라앉는 제조사 인사팀에 근무 중이다.
야근은 많지 않아도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할 일이 쌓였던 몇 달 전과 달리, 정말로 위기가 코앞에 온 회사의 인사팀 실무자는 할 일이 없다.
특히 주로 교육을 맡았던 나는 비용절감 기조에 따라 교육도 대폭 축소되었으므로 오전만 집중하면 끝날 일이 대부분이고, 오후엔 여기저기 이력서 낼 곳을 찾아다니기 바쁘다.
이 회사는 안정적이라는 인식도 있고, 급여도 내 인생에선 가장 많이 주는 회사이므로 이 회사에 들어와 결혼도 하고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애정을 갖고 있어 누가 보면 내가 오너가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로 인원을 줄여야 하냐느니, 어째야 하냐느니 혼자서 안 좋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고심 아닌 고심도 했던 터였다.
그렇기에 아마 성장하는 회사였다면 계속 근무를 하리라, 이직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회사를 '탈출'하려고 애쓰게 된 것은 결국 좋은 리더의 부재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나를 둘러싼 리더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① 의사결정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팀원들과 함께 흔들린다.
- 이건 상위직급도 마찬가지인 게 경영진 조차도 악화된 경영환경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② 팀원들 앞에서 회사나 다른 직원들 욕을 하고, 해야할 일 앞에서 팀원에게 감정을 드러낸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쓸데없는 말이 많다."
작년부터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나뿐인 후임이 들어와 선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믿고 따르던 선배가 나갔으며 비로소 함께 성장한다고 느끼게 했던 팀장님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 변화 속에서 팀의 가장 오래된 인사담당자가 되었고, 새로운 팀장님을 모시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회사의 상황은 더더욱 어려워지는 부가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이 나에겐 업무적으로는 정체되었을지 몰라도 사람 관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였고, 동시에 말이 많은 리더를 처음 겪어서 괴로운 순간이었다.
① 의사결정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팀원들과 함께 흔들린다.
신입사원을 후임으로 두니 내 생각보다 더더욱 세세하게 지시와 요청을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는 알겠지 싶은 것도 모르는 것이 신입사원이었고, 나 조차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모호하게 지시했을 땐 전혀 다른 혹은 매우 아쉬운 결과물을 가지고 오는 게 신입사원이었다.
그래서 후임의 수습기간 동안은 최대한 세세히 지시를 했던 것 같다.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까지 마이크로매니징처럼 지시를 했더랬다.
늘 내가 보낸 메신저는 길어서 나중에 보면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말이 많은 팀장은 처음엔 배울 게 많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허울 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해야 함은 알고 있으나 본인이 알고 있던 지식과 다르게 운영되는 회사의 방침에 대해 왜 잘못되었는지 30분 넘게 나열하곤 어떻게 하라는 지시가 없어서 방향성을 잃기 일쑤였다.
업무상 의사결정이 필요해 찾아가면 그 자리에서 30분을 삼천포로 빠진 소리를 듣고 결정도 받지 못한 채로 돌아오곤 했다.
몇 번 반복하다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건 "어떻게 할까요?"의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주인의식은 강해져서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의 질문만 들고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우려되는 건 신입에게도 똑같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기 의사결정력이 부족한 신입사원은 헷갈려하고, 옆에서 슬쩍 들은 뒤 내용을 정리해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건 선배들의 몫(나와 동료)이었다.
의사결정을 못하는 리더는 팀원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잃는다.
이전 팀장님은(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을 갖췄기에 이 분과의 비교가 많을 것이다.) 공부하라고 본인이 작성한 파일이나 보고자료를 공유해주셨다.
윗 사람이 쓰는 양식과 단어를 채택해야 보고할 때에 그 사람 눈에도 잘 들어온다며 본인이 쓰는 양식과 단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자료를 보내주시곤 하셨다.
경영진 보고자료까지 받아보며 자료를 작성하는 기술을 모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 많은 리더는 본인의 의사결정에 확신이 없어 확인을 받기 위해 자료를 보여주고 상황을 '보고'했다.
본인 혼자 결정하기에 부담스러워 팀원들의 의견을 묻고 반영해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물론 '팀'이기에 함께 나아갈 수 있지만 모든 일에 주도성을 잃는 리더는 신뢰도 점점 잃어갔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모호한 의사결정이 아랫사람에 끼치는 대혼돈에 대해 체감하게 되었다.
그 덕에 나는 마이크로매니징 마냥 신입사원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지시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모호한 상황은 일단 끊어내고 "생각해보고 알려드릴게요"라고 돌려보낸 뒤 방향을 잡고 답변했다.
사실 이 모습 역시 이전 팀장님의 영향으로, 그 분 역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은 생각해보고 알려주신다며 돌려보내곤 했다.
그렇게 하면 기다리는 시간은 인내를 필요로 할지라도 그 끝엔 명확한 지시가 따라오니 혼란 없이 일에 임할 수 있었다.
리더의 책임과 권한이 커지면 커질수록 모호한 의사결정의 악영향은 곱절로 커진다.
지속되는 적자를 구조조정으로 끝낼 것인지, 비용은 감축할 것인지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주저하는 경영진으로 인해 전사가 혼란에 빠졌다.
팀 단위면 그나마 5명 내외의 인원에서 끝나겠지만 경영진의 모호함은 몇 백명을 좌지우지하고 의욕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그로 인해 회사의 존망이 결정되기도 한다.
나 역시, 모호한 경영진 아래에서 비용을 줄였다가 다시 예산을 받아내고 들어오는 충원 요청을 쳐내다가 결국엔 모두 채용시키는.. 방향성을 알 수 없는 상황에 탈진해버렸다.
인건비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는 인사 담당자인만큼 높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시급함이 분명한 상황에서 현업의 요청을 결국엔 수용하는 경영진과 인사팀장의 모습에 모든 의욕과 동기를 상실했더랬다.
이는 결국 인재의 이탈로도 이어져 회사의 비전과 방향성을 모르겠다는 퇴사 면담/설문을 끝으로 주요 실무직들이 빠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② 팀원들 앞에서 회사나 다른 직원들 욕을 하고, 해야할 일 앞에서 팀원에게 감정을 드러낸다.
리더는 외로워야 한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노골적으로 본인의 감정과 사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순간 그 위엄이 순식간에 떨어지고 팀원의 동기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리더의 감정이 끼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내가 이번 회사를 들어옴과 동시에 이전 회사 생활에 대해 가장 후회했던 부분은 동료들과 온갖 사담을 나눈 것이다.
단순 사담이 아니라 회사 욕, 사람 욕 많이도 했다. 그 회사의 그 팀은 유독 그런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면서 회사에 대한 정이 떨어지고 결국 이직을 했던 건데(나름 신입 시절이라고 많이도 휩쓸렸다.), 돌이켜보니 그 곳에서 버텼더라면 또 다른 좋은 경험들을 했으리라.
실제로도 욕하면서 했던 업무들이 또 하나의 자산이 되어 나에게 남아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 회사에 들어온 후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눈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동료 간의 감정 섞인 대화가 이렇게 회사에 정이 떨어지게 만드는데, 하물며 윗사람이 하는 욕은 어떨까?
내가 이 회사에서 겪은 3명의 팀장 중 2명은 그런 것들을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실제로 회사를 사랑하는 분도 한 분이었고, 한 분은 가끔 간접적으로 언급은 하더라도 평소에는 업무적으로만 모든 것을 대했다.
이제는 나간 선배도 퇴사를 결정하기 전에는 회사에 대해 좋은 말만 하고 어렵다고 토로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다른 의견을 제시해주시곤 했다.
(막상 퇴사를 결정하셨을 때에는 그간 하지 못한 말들이 봇물 터지듯 나와서 아, 이런 사람도 참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보고 배운 게 그것이니 나 역시 후임에게는 회사에 대한 욕은 하지 않았다.
곤란한 상황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업무적으로 해결책만 알려주려고 했다. 계속 함께한 동료에게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라도 이 친구에게 만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선임의 감정은 후임에게 더 큰 쓰나미가 되어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했고, 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을 깎아먹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윗 팀장들(내 팀장, 옆 팀장 등)은 그런 것들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직책자 회의가 끝나고 오면 팀원들 앞에서 뒷얘기를 하기 바빴고(둘이서 속닥거리지만 사무실 내 모든 이에게 들리는 수준이었다.),
본인들에게 주어진 업무가 이해되지 않으면 그걸 팀원들에게 푸념하곤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본인은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고 스트레스를 푸냐는 것이었다.
미안하지만(사실 미안하지 않다.) 그건 본인이 혼자 삭힐 문제라 생각한다.
이해되지 않는 윗선의 지시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혹은 이것을 어떻게 팀원에게 전달할 것인지 외롭고 치열하게 생각했으면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다른 곳에서 풀길 바랐다.
정작 어떻게 하자는 방향성은 없이 감정만 풀어내니 팀원으로선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지?'라는 의문 밖에 들지 않았다.
나아가 회사 상황이 안 좋아졌음을 더(혹은 과도하게) 느끼게 되며 탈출에 대한 의지를 키웠다.
현업에서의 무리한 요구가 있으면 이에 대해 불평 불만할 게 보여 보고를 하러 가기가 꺼려질 정도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혹은 본인 조차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습은 팀장에 대한 신의와 존경심을 잃게 만들기 딱 좋았다.
그러니 팀원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팀원끼리 논의해서 해결하려고 했고, 당나라 군대 마냥 서로 흩어진 모양의 팀이 되어 버렸다.
사적인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리더에겐 위압감과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문제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의 결정이 신중하고 믿을만한 것이라는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문제상황은 즉각 보고되고, 팀은 팀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흘러갈 수 있다.
나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이전의 두 팀장님은 그런 위압감이 있었고 무게감이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팀장에게는 그런 것이 없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무시하고 있었다.
팀장이 아닌 팀 내 중간관리자 수준의 팀원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회사도 팀도 그리고 나 자신도 방향성을 잃은 지금, 어떤 일을 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아 업무 시간에 브런치나 쓰며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이렇게 쓰고나니 팔로워가 원하는 리더란(아니, 내가 원하는 리더란)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팀원들이 원하는 의사결정은 가급적 빠르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고, 본인의 감정은 그 앞에서 숨겨야 한다. 같은 팀이지만 털어놓을 이가 없으니 외로운 자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근로자임과 동시에 사용자의 입장인 인사담당자의 눈에는, 그러라고 팀장 수당을 주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많은 돈을 받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성과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보이니, 외로워도 어쩌겠나. 받았으면 감내 해야지.
아쉽게도 이 회사의 리더들은 받았음에도 결과물로 뱉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 모습에 질려버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이 덕에 나는 어떤 리더로 성장해야겠다..며 나름대로 방향성도 잡을 수 있었기에 마냥 아까운 시간은 아니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내 생각이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은 나의 신세한탄이자 이곳은 나의 대나무숲.
매일 생각하고 있던 것을 줄줄 읊어대니 속은 시원하다.
이제 공감은 읽는 분들의 몫.
나는 썼으니 그걸로 행복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