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무언가 견고해지는 중인 것 같아요.
하이 브런치.
나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친구가 고등학교 때에 비해 현재 31살(만 30살이요, 생일이 넘지 않았다면 29살인)을 지나는 지금, 어떤 점이 많이 달라졌냐는 질문을 던졌다. 다들 근무시간에만 카톡이 활발하므로 대체로 화가 많아졌다고 했다.(그건 어쩔 수 없다. 회사에서 자신의 성격을 돌아보고 있자면 화가 많아진 사람으로 밖에 평가할 수 없다. 회사에선 화가 조금 많아진다.)
이런 저런 얘기가 나왔는데 한 친구는 ‘굳건해졌다‘라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관계에 있어 굳이 애써 잡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을 했다.
이 두 문장에 많은 공감을 했다.
정말 딱 서른 살을 지나고 나니 내 스스로 ‘아닌 건 아니다‘라는 기준이 내면에 생겼고, 이를 토대로 할 말은 하고 살 줄 알게 된다.
화가 나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면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화를 낼 수 있게 되었달까. 그게 ‘화가 많아졌다’라는 막연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본인만의 명확한 옳고 그름이 생겼고 그에 맞지 않는 이해불가한 상황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에는 나 자신보단 외부에 판단 기준을 두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고(주변 사람들 등) 부당함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게 많았다. 그래서 그 때에는 친구나 가족 등 가까운 타인을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는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 같기도 하다. 본인 선에서 표출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 돌아서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본인의 감정을 토해내는 것이다. 그에 반해 지금은 비교적 스스로 해결하는 힘과 자신감이 좀 더 생겼다.(그럼에도 여전히 너무 화가 나지만 즉시 표현을 하지 못 할 때-가령 회사 상사에 대한 문제 등-에는 단톡방에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이런 거 보면 아직 멀었네..)
조금씩 나이를 먹으니, 본인만의 고집이 생겨서 뚝심대로 밀고 나가는 성향도 강해진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례를 들긴 어렵지만, 회사원으로 보자면 팀장이 지시한 일에 그저 ‘네네’만 하는 게 아니라 의견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 근데 그것이 나름 내 업무 경험에 빗대어 이유와 논리를 갖춰 나가는 것이다. 비단 화를 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만 달라진 건 아니다. 칭찬과 감사에도 익숙해졌고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렇게 흔히들 말하는 ‘오지라퍼’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일을 하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굳이 한 번 더 연락해서 ‘도와주신 ~한 일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 감사하다.‘라고 표현하게 되기도 하고, 가게에서 마주친 친절한 직원에게도 감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좀 뻔뻔해진 것 같다. 예전이라면 민망하고 몸이 꼬여 표현은 못하고 지나갔을텐데 뻔뻔하게 말을 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30년 정도 살고 나서야 비로소 ‘나‘자신의 취향과 성향에 대해서 파악하게 되었다.
20대 때에는 ‘나’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직장을 구함에 있어서도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이 일에 맞는 사람인지 몰라서 어영부영 하면서도 동시에 속으로는 ‘누가 나한테 뭐뭐 하라고 인생 플랜을 짜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특히나 너무나도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만 보고 공부만 하고 부모님한테 기대기 좋아했던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자립심이 더더욱 부족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도 내 전공이 이것이니 이 쪽으로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첫번째 직장을 들어갔다. 그 때는 표면적으론 ‘성인‘이었고 스스로 돈을 버는 직장인이니 다 큰 척 했지만 여전히 내가 뭘 해야하는지 모르고, 인생의 전략도 계획도 없었다. 그러니 어영부영 시간만 보냈다. 지금도 물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겠다라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으나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내 성향은 어떤지 어느 정도 파악을 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도 개인적으로는 ’내 일을 한 번 해보고 싶다.’ 라는 막연한 목표가 생겼고, ’낚시배 하나 사서 지방에서 소소하게 살기’라는 남편과의 공동 목표가 생겨서 그걸 보고 인생을 나아가게 되었다.
또 내 성격과 성향(언제 예민해지고 언제 편안함을 느끼는지, 화가 나는지 등)에 대해 마침내 어느 정도 알게 되어 나의 편안한 심리 상태를 해치는 것들은 미연에 방지하거나 나만의 방법으로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다녀온 해외여행이다. 약 10년 전 다녀온 그 여행을 돌아보면 대체로 나는 예민하고 날이 서있었다. 내 성향을 내가 모른 채로 가니 매번 부딪히는 새로운 상황들 속에서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이제는 가면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혹은 지금의 내가 그 때로 돌아가 여행을 다시 간다면 더욱 잘 다녀올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사람 관계에 있어 떠날 사람을 애써 잡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매우 공감을 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덧붙여 애써 잡기도 하게 되었다고 덧붙이고 싶다.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기도 한데, 내가 스스로 생각해봤을 때에는 지나가는 짧은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소중한 인연은 나서서 지킬 줄 아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10대 때는 주변의 모든 인연을 붙잡고 싶어서 전전긍긍했고 그 때에는 ‘절교’라는 게 마치 형벌처럼 들렸고, 나도 상대에 형벌을 내리듯 ‘절교’를 선언하곤 했다. 그만큼 하나하나의 관계가 나를 설명하고 지탱하는 힘이라 생각해, 친구들이 없어지면 내 삶도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대가 되니 보낼 인연은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잡고 싶은 사람을 잡을 용기는 없었다. 계속 연락을 하고 싶어도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까?‘, ‘나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섣부른 걱정에 먼저 연을 이어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30살을 기점으로 보낼 인연은 보내고, 잡고 싶은 이에겐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를 조금이나마 갖게 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가는 만큼 돌아오지 않는 어떤 것에는 미련이 남기도 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예전에 어느 예능 프로에서 서장훈이 출연자에게 해준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던 출연자로 기억하는데, 서장훈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고백을 해라! 단, 고백을 하는 것은 너의 자유,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자유라는 걸 잊지마라!’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으니 비단 연애 뿐 아니라 사람관계 모든 곳에 다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관계 업체 측에 협상을 요청할 때에도 그걸 제안하는 건 내 자유, 이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상대 측의 자유라 생각하니 어쨌든 요청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에 대해 실망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 결혼 준비를 할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가끔씩 연락하던 동아리 사람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기 위해 청첩장 모임에 초대하는 카톡을 돌리는데, 그게 그렇게 긴장이 되더라. 근데 그 와중에 제안하는 건 내 자유, 거절하는 건 상대의 자유라 생각하니 조금 더 뻔뻔하게 초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연락에서도 동일한 맥락을 유지한다. 요즘은 내가 연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부연락을 ‘그냥’ 보내본다. 내가 안부인사를 하고, 이후 직접 만나거나 계속 연락을 하는 걸 결정하는 건 상대방의 자유이다. 다만 나는 가져가고 싶은 인연에는 부족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으므로 연락을 취해보는 것이다. 서장훈을 조언을 생각하자면 상대에 거절 당하는 두려움이 줄어들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 만난 관계에 있어서도 생각이 많이 변했다. 몇 년 전의 나는 지나간 회사 사람들과는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며 호언장담을 했더랬다. 사실 그건 완전 방어기제였다고 생각한다. 퇴사한 사람이 연락했을 때 어차피 회사사람이니 싫어하겠지?라는 생각에 먼저 연락하지 못 했고, 그게 ‘쿨’한 모습이라 생각하며 입방정을 떨었다. 그 덕에 지금 회사를 들어와 짝짝꿍이 잘 맞는다 생각한 동료가 퇴사한 이후 연락을 하지 못했다. 유머코드도 잘 맞고 해서 연락하고 싶다가도 내가 말한 것도 있고, 정말 이전 회사의 사람이 연락하면 싫어할 거란 막연한 걱정에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작년에 많이 따르던 선배님이 퇴사할 때에는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분도 워낙 연을 이어가고 언제든 열려있는 분이기에 가능하겠지만 1년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두어달에 한 번 씩 만나뵙고 연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선배 언니에게 안부연락을 보내봤다. 다른 이유는 없이, 대학생 때부터 멋지다 생각하던 언니인데 그만큼 나에겐 벽이 느껴져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늘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이 멋있어 더 친해지고 싶다 생각했는데 세상에, 그 분을 알게되고 10년이 지난 30살이 넘어서야 안부인사를 겨우 보내봤다. 감사하게도 기꺼이 만나자고 답변을 주셨고 나의 작은 안부인사는 또 이렇게 연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30대로 들어서며 내 자신 속 무언가 견고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괜한 기대를 해본다.
주변에선 나이먹기 싫다고 세월이 빠르다고 한탄하지만 정작 난 나이를 먹는 게 즐겁다.
10년 뒤 나는 또 어떤 모습일지, 적어도 1년 뒤 나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계속 변화를 거듭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렇게 돌아보면 그래도 나이를 똥꼬로 먹은 건 아닌 것 같다.
앞으로도 똥꼬로 안 먹게 조심해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