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란 무엇인가?

30년만에 찾은 진짜 나를 쉬게 하는 취미.

by 미나

하이 브런치.

나다.


최근 아이패드를 산 이후로 매일 아침 출근 전 카페에서 30분 가량 시간을 보내고 간다. 30분 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로 정리하고, 쓰고 싶은 내용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그러다보니 더욱 자주 브런치에 들어와 쓰고 싶은 글을 쓰게 되는구나.


오늘은 내가 최근 ”이게 진짜 나의 취미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낚시]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낚시에 빠진지 약 두어 달 정도 된 것 같다.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고민하던 와중 몇 년 간 미루고 미루다 체험삼아 가보게 된 낚시를 기점으로 나는 30년 만에 취미랄게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는 단순히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는 것에서 나아가 조금 더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행위였다.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 글을 ’쓴다’거나, 런닝을 ‘한다‘는 것 등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는 행위들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들을 통해 온전히 치유 받는 경우, 이를 취미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따라서 나에겐 그런 행위가 마땅히 없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종종 글을 올리지만 이 행위들을 통해 온전한 쉼을 느낀 적은 없다시피 하다. 따라서 누군가 나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나는 “딱히 없어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그렇게 취미 방랑자로 살던 내가, 30년 만에 주말을 기다리게 만들고 온전히 나 자신을 쉬게 만드는, 하고나면 다시 오롯이 일주일을 잘 살아볼 수 있게 만드는 취미를 찾은 것이다. 체험 낚시 이후, 거의 매주 낚시터를 가거나 선상 낚시를 갔고(개인적으로는 선상 낚시를 훨씬 선호한다) 이번 여름 휴가도 낚시의 고장(!) 통영으로 다녀왔다. 새로운 것에는 발을 잘 들이지 않는 노 리스크, 노 리턴 추구자인 내가 낚시에 있어선 이 낚시, 저 낚시를 해보고 싶어 남편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들 받아들이고 낙천적으로 바뀌니 신기할 따름이다.


통상 낚시는 중년 남성들의 전유물로,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을 둔 아내들은 그들로 인해 골치를 썩는다고 한다. 주말이면 여기 저기로 나돌아다니고, 그만큼 돈도 많이 쓰니 말이다. 지금 나의 상태는 그마저도 질투가 난다. 낚시가 중년 남성의 전유물이라니! 낚시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평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인데! 낚시터가 풍기는 비린내, 비교적 쾌적하지 않은 환경 등이 ‘뉴비’들의 진입장벽이 되긴 하지만 이걸 잠시 극복하고 나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짜릿한 손맛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나의 경우 최소한 남편보단 어복이 있어서, 간혹 남녀 비용을 다르게 받는 낚시터를 가면 괜히 억울하다. 여자의 입어료가 보통 남자보다 1만원 정도 싼 편인데, 나는 남편보다 더 많이 잡는 경우가 많으므로 똑같은 비용을 내고 싶다는 요상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낚시에 빠지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① 일상적인 생각을 멈추게 만들어주고, ② 나 혼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① 일상적인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낚시.


나는 생각 과잉자이다.(실제로 있는 말인가? 모르겠다. 그저 나는 과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붙여봤다.) 낚시와 운동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기존의 나는 주변의 냄새, 소리, 풍경 등에 민감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의 원인을 알아내고 싶어서(실제로 알아내기 불가능할지라도) 끝까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왜 이런 냄새가 나지.‘, ’왜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을까?’ 등등… 그러니 나에게 삶은 너무나도 피곤하다. 신경 쓸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낚시를 하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찌낚시를 하면 찌가 언제 들어가는지 바라보고 있기 바쁘고, 선상낚시를 하면 보이지 않는 바닷속 입질을 느끼느라 내 손의 감각에 신경을 쏟을 수 밖에 없다. 루어낚시를 하면 원하는 지점에서 던지고 가짜미끼가 떨어지는 순간을 찾고 진짜 물고기인냥 액션을 줘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하기 바쁘다.


즉, 일상적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나는 물고기를 잡아야 하므로 오롯이 내가 잡은 낚시대, 내가 보고 있는 찌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낚시만 하고 나면 마치 명상을 한 것처럼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 든다. 일주일 내내 끈덕지게 생각하던 것들로 머릿속은 온갖 슬라임과 거미줄, 먼지가 엉킨 지저분한 방 같다. 그러다 낚시만 하고 오면 누가 리셋 버튼을 누른 것 마냥 모든 게 다 사라져 있다. 약간 바보가 된 상태 같기도 하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평일 내내 치열하게 사유하던 사람은 사라지고 아무 생각 않는 로봇의 상태가 된 기분이기도 한데, 그게 또 절대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필요했다, 그런 순간이.


낚시도 나름 야외활동이라고 어디 안 가고 낚시터에 앉아만 있다 와도 몸이 고단해서 다녀와선 그저 대자로 뻗어 자기 바쁘다. 그러니 다녀와서 일상으로 복귀해 다시 뇌를 굴린다? 그것은 쉽지 않다. 일단 신체가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야외활동이기에 일주일 내내 쬘 햇빛을 하룻동안 다 쬔다. 세로토닌의 자연스러운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사실 낚시를 하고 난 후 어떤 안정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사무실에 있다보면 하루 12시간씩 해를 쬘 일이 절대적으로 없으니. 그래서 나는 낚시를 시작하고 거무잡잡해진 나의 팔과 다리, 얼굴이 흉하지 않다. 그저 나에게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었다는 반가운 신호처럼 느껴진다.


② 나 혼자 하는 것이기에 즐거운 낚시


세상이 참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특히 회사원이라면 주어진 일 안에서, 윗선에서 허락하는 일에 한해서만 진행할 수 있으니 내가 온전히 통제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이런 일상 속에서 많이 지쳐있었다. 의지를 다잡고 하려다가도 윗선에서 반려 당하거나, 내 의견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들을 보며 또다시 꺾여버리곤 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도 결국은 개성있는 각각의 개인이기에 이 사람들이 내 마음처럼 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것도 또 나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 사람한테 맞추고, 저 사람한테 맞추고 여러 방면으로 소진되어 가고 있던 것이다.


낚시는 오롯이 혼자서 통제할 수 있는 활동이다. 어떤 낚시대를 쓸 것인가, 어디에 던질 것인가, 오늘의 미끼는 무엇인가, 낚시의 종류는 무엇인가 등. 나의 선택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나는 오롯이 나의 선택을 결과물로써 확인할 수 있다. '혼자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왜냐, 결국 미끼를 물어주는 것은 물고기이고 그것은 날씨와 물때 그리고 물고기의 마음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자연적인 현상은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개인으로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한해서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은 힘들지 않았다. 정성스레 준비해서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해도 편안했다. 아쉬움은 있고 이미 지불한 입어료가 생각나 조금 마음이 쓰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 결과물 아닌가? 자연적 요인은 내가 회사 상사가 되든, 대통령이 되든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스트레스 요인에 완전히 제외된다.


남편도 나에게는 낚시에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하라고 선언했다. 한 번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인 남편은 낚시도 끝을 볼 작정으로 공부하고 파고들었다. 그만큼 많이 알게 되니 언제 한 번은 함께 간 낚시터에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을(내가 말하기론 참견을) 하더라. 그 날 나는 스트레스 해소는 커녕 예민함이 극에 달해버렸다. 혼잣말로 욕짓거리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 좀 내 마음대로 하는 곳에 와서 내가 하겠다는데 그걸 또 통제하니 속이 터져 견디질 못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며칠 뒤 조심스레 말했다.(예전엔 극 T였는데 이제는 F 성향이 짙어져 이런 말에 상처를 받는다.) 낚시터에서 나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로 인해 조과가 좋지 않아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말이다. 연애 8년에 결혼 1년, 남편도 눈치가 빨라져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이게 또 그렇게 고독한 활동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낚시꾼들 만큼 친절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뉴비'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좀 서툰 낚시꾼이 헤매고있다 싶으면 본인의 낚시대를 내려놓고 다가온다. 단순히 채비나 낚시방법을 알려주는 것에서 나아가 본인이 갖고 있는 미끼를 준다던가, 물고기를 준다던가 선의를 표하는 것이 낚시꾼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낚시는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본격적인 선상 낚시를 갔을 때 우리 부부에게 낚시 방법을 알려준 조사님이 있다. 어떤 미끼를 써야하고 어떻게 물고기를 유혹해야 하는지 그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성심성의껏 알려주셨다. 그 분이 알려주시고 나서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던 우리는 조과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내가 장난으로 "사장님, 왜 저희랑 미끼 색깔이 달라요?! 경쟁자 제거하려고 거짓말 치셨죠!"라고 농담을 건네니 "낚시에 경쟁자가 어딨어. 같이 하는 거지!" 라고 하시더라. 아차차, 맞는 말이다. 특히 바다 위에선 더 그렇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나, 인간 한 명의 낚시는 다른 이의 낚시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경쟁 따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돕고 즐기는 행위가 된다. 낚시터에서도 다른 사람이 잡으면 그저 부러울 뿐 ‘저 사람이 잡아서 내가 못 잡는가!‘라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낚시터에선 때가 되면 방류라고 해서 물고기를 풀어주고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물 속에 수많은 물고기가 다니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옆 사람이 잡고, 내가 못 잡은 것은 옆사람의 탓이 아니라 그저 내 어복 탓이라 경쟁심을 느낄 수가 없다. 오롯이 나의 것에만 집중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나 더, 혼자 하는 것이지만 같이 하는 것임을 느끼는 순간이 조사님들과 농담하는 순간이다. 대체로 아저씨들이 많아서일까? 순전히 나 자신만을 봤을 땐, 낚시는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잘 맞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또 은근히 일회성 만남에 강하다. 스몰토크를 즐기고 잘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굉장히 지금 비약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처음 보는 조사님들과도 ‘사장님’하면서 서로 농담도 많이 하고, 서로의 낚시를 응원해준다. 위에 언급한 조사님과도 그 날 농담하며 즐겁게 낚시하고 그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 배에서 연달아 뵙게 되었는데 뵐 때마다 농담을 그렇게 많이 했더랬다. 말 그대로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초월해 서로 대화를 하며 즐기는 것이다. 그 대화는 낚시대를 거둬올리는 순간에만 잠깐 잠깐 이루어지므로 이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 등을 고려할 필요 없이 릴스나 숏츠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그래서 혼자하는 활동이지만 또~ 그렇게 고독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꼭 언급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일회성 만남에 강하고 그 상황을 즐기며 수다를 잘 떨지만 깊은 관계를 가져가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끼는데, 때문에 어느 모임에 가입하지 않는 이상 일회성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이 활동에 더 매력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드디어 사람들에게 내 취미를 얼버무리지 않고 한 단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온전히 해소할 수 있는 창구를 갖게 되었다. 6월 중순, PMS 때문에 먹기 시작한 항우울제의 복용을 중단할 수 있었던 것도 낚시를 시작하며 감정기복을 많이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혹시, 아직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쯤은 그냥, 재미로 낚시대를 던져보길 바란다. 적어도 얼마 전 데려간 나의 친구들은 낚시의 매력에 빠져 6시간이 부족해 연장을 한 뻔 했으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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