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 납부로 착각하게 만드는 적십자회비 지로용지 논란
각 가정으로 발송되는 대한적십자사의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두고 매년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매년 12월부터 1월까지 ‘집중 모금기간’이라 정한 대한적십자사는 각 세대주에게 지로용지를 배부한다. 이에 사람들은 어떻게 집 주소를 알고 보내는지,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적십자사의 지로통지서가 마치 세금고지서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어 의무 납부라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다.
적십자회비 반강제 징수 논란의 핵심인 대한적십자사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영리 특수법인이다. 1903년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의 제네바협약에 가입하고, 1905년 고종황제 칙령으로 '대한제국 적십자사'로 발족했다. 전 세계적 국제기구인 국제적십자사연맹의 일원이다. 대한적십자사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전개한다는 목표로, 남북 사업, 헌혈 관련 업무, 재난구호, 사회봉사, 병원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적십자회비는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비극을 극복하고자 정부가 국민에게 성원을 당부하는 선포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때는 국가가 개입하여 적십자 모금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쟁으로 발생한 고아나 전상자에게 큰 도움이 됐다. 현재는 재난 예방과 구호활동과 복지사각지대 긴급 위기가정 지원, 저소득층 혹서(한)기 지원, 희망풍차 결연사업, RCY(청소년적십자) 활동지원 등 다양한 인도주의 사업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재난 예방이나 구호활동과 같이 어떤 이에게 꼭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고 하지만 과거 수 십 년 전과 같이 행정기관의 손을 빌려 반강제적인 모금활동을 계속하자 논란이 커졌다. 국민이 우러나는 마음에서 내는 모금이 아닌 지로용지를 발송해 모금하는 형식은 오히려 인도주의 사업에 대한 거부감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회비를 모금할 때 지로 용지를 발송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1996년까지는 통, 반장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성금을 걷는 방식이었는데, 강제성 논란이 일게 되자 지로용지 발송으로 대체되었다.
예전 적십자회비는 재산세를 기준으로 차등하여 세대마다 찍힌 금액이 달랐다. 2016년 이후 소득에 상관없이 만 25~75세의 전 세대주에게 1만 원이 찍힌 지로용지를 발송하고 있다. 단,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6조 제4항을 근거로 하여 개인(세대주), 사업자, 법인 및 단체를 대상으로 발송되고 있다. 개인은 1만 원, 개인사업자는 3만 원, 법인은 5만 원 등으로 일괄 적용한다.
매년 12월, 연말에 발송되는 지로용지는 모금 기간(다음 해 1월 31일) 내에 적십자회비를 내지 않은 세대주에게 또다시 2월에 2차 지로용지를 발송한다. 지로통지서에는 기부금 납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금융기관 지로창구, 무인 공과금 수납기나 신용카드도 이용할 수 있고,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등 간편 결제로도 기부할 수 있다. 이외에도 QR코드 결제, 금융결제원 사이트 또는 적십자 홈페이지에서도 송금할 수 있다는 설명이 지로통지서에 적혀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본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제공되는 적십자사 지로 통지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적십자회비는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를 근거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세대주 성명과 주소 등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회비를 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도 요청할 수 있다. 이는 개인정보 제공을 위한 별도의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사람들의 정보를 쉽게 수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적십자사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거부 반응이 더욱 심해졌다. 간호사 채용 비리,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성희롱 발언, 혈액백 입찰을 둘러싼 특혜 의혹 등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적십자사의 횡령 혐의가 심심찮게 터지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신뢰도가 많이 낮아졌다. 이런 사건과 더불어 개인정보 동의를 받지 않고 지로용지를 발송하는 대한적십자사의 행위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적십자회비 지로용지 발송을 반대'한다는 국민청원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모든 은행의 점포를 활용할 수 있어 편리하고, 참여자가 누군지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지로 용지를 활용하는 것’이라 설명하며 ‘임의로 규격 변경을 할 수 없어 공과금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지로용지에는 ‘적십자회비는 자율적으로 참여하시는 이웃사랑을 위한 실천입니다.’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연세가 높은 노인이나 일부 국민이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으면 마치 반드시 내야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적십자사가 매년 공개하는 '사업실적 및 결산설명서'에 따르면 2017년 지로 용지를 통해 모은 금액은 472억 2,484만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모금 금액인 1,028억 중 45%에 차지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2016년에 507억 638만 원을 모금했던 것에 비하면 기부금이 감소 추세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적십자사는 지로통지서 제작 및 발송 비용으로 2013년 27억 9,678만 원, 2017년 31억 6,454만 원을 지출해, 발송 비용 대비 모금 금액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 적십자사 198개국 중 지로용지를 집집마다 배포해 모금하는 방식은 한국이 유일하다. 적십자회비 지로 용지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면 담당지사에 세대주 명과 주소를 얘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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