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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Mar 04. 2019

광기 넘치는 세계의 악녀

잔인한 그녀들이 저지른 악행들

역사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까지도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희대의 악녀들이 있다. 남성 못지않은 권력을 쥐고 있으며,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거나 거스르는 경우 가차없이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의 악녀들은 광기 넘치는 살인을 여러 번이나 저질러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많은 악녀 가운데 세월이 지나도 그 악행으로 유명한 ‘희대의 악녀 10인(서양편)’을 준비해봤다. 서양에는 어떤 악녀들이 살았으며,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역사가 기억하는 악녀들에 대해 알아보자.

메리 1세 (1516~1558)


영국의 첫 여왕이었던 메리 1세는 헨리 8세와 캐서린 황비 사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장녀로, 즉위 후 영국에서 어머니의 종교였던 로마 가톨릭교를 부활시켰으며, 수많은 신교도를 무자비하게 처형해 ‘피의 메리’로도 불린다. 국교를 바꾸는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교를 다시 성공회로 바꾸라고 했지만, 이 반란은 메리에 의해 제압당했다. 이후 반란 주동자의 뒤를 조사해보니 아버지인 헨리 8세가 있었고 메리의 피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무려 8백여 명의 프로테스탄트가 메리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미라 힌들리(1942~2002)


현대에 들어 영국 최고의 악녀로 손꼽히고 있는 미라 힌들리는 유명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1963년부터 2년간 남자친구의 이안 브레드와 함께 5번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미라 힌들리가 살인 대상자를 물색하고 납치해 무어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대상을 넘기면 남자친구가 성폭행과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봤다고 한다. 광기 넘치는 미라 힌들리와 남자친구의 이러한 살인 행각은 힌들리 시동생의 신고로 멈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벨 1세(1451~1504)


이사벨 1세는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스페인의 여왕이었다. 이사벨 1세는 스페인을 만든 여왕이자 그녀의 자금을 받은 콜럼버스는 미대륙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녀의 힘에 의해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가톨릭을 믿지 않는 유태인과 무슬림들에게 개종을 지시, 이를 어긴 사람들은 가차없이 숙청했다고 한다. 종교를 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은 약 20만 명이라고 한다.

비버리 얼릿(1968~)


비버리 얼릿은 뮌하우젠 증후군에 걸린 간호사로, 1991년 영국 동부 링컨셔에 있는 그랜담 앤 케스티브 종합병원 소아병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4명의 아기를 죽이고, 5명의 아기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그녀는 아기들에게 약물을 투여해 심장발작을 일으키게 한 다음 지극 정성으로 아이들을 되살렸는데, 아기의 부모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고마워할 것이라 생각해 이러한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 타인의 사랑과 관심,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자신의 상황을 과장하는 행동을 함)

벨 거너스(1895~1931)


벨 거너스는 183cm의 키에 90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육중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그녀와 결혼한 남편들은 1년 안에 모두 사망했으며, 그녀가 입양한 두 딸과 아들은 집에 난 불로 사망했다. 이 때 사람들은 거너스도 함께 사망했을 거라고 추정했지만 수소문을 통해 그녀가 불이 났을 때 집에서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는데, 돼지우리에서 무려 14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14구의 시체는 대부분 거너스와 하룻밤을 보낸 부랑자들이거나 농장 일을 도와주러 왔던 남자들의 시체였다고 한다.

마리 앤 코튼(1832~1873)


영국 출신의 살인범 마리 앤 코튼의 악행은 다음과 같다. 20세에 결혼한 그녀는 5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4명의 아이를 위장병으로 잃게 된다. 이후 이사한 그녀는 3명의 아이를 더 낳았으나 이 아이들과 남편 모두 사망했다. 이후 두 번이나 더 재혼했지만 두 남편도 첫 번째 남편과 비슷하게 사망했으며 아이들도 사망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그녀를 체포, 3명의 남편과 10명의 아이를 죽인 것을 밝혀냈다. 그녀는 비누에 비소를 비누에 섞거나 아이들 이유식에 비소를 타는 등의 방법으로 가족을 살해했다.

일제 코흐(1906~1967)


부헨발트의 마녀로 불리는 일제코흐는 나치의 SS 친위대 장교였던 카를 오토 코흐의 부인으로, 수용자들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고, 수용자 시체의 피부를 수집해 전등의 갓으로 만드는 등의 기행을 저질렀다. 그녀는 매년 체육관과 수영장을 만들었는데, 설립비는 25만 유대인 수감자들의 유품을 팔아 챙긴 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서독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아이하흐에 있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르마 그레제(1923~1945)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 라벤스브뤼크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간수였던 이르마 그레제는 유대인들의 고문을 맡고 있었으며, 나치 장교들을 자기 밑으로 둘 정도의 색녀이기도 했다. 그녀의 악랄함과 잔인한 유태인 고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여간수 서열 2위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그녀는 유대인에게 성적 학대를 일삼는 것은 기본이고, 굶기고 총살과 채찍질로 고문을 가해 죽이기도 했다. 종전 이후 그녀는 나치 전범으로 처형을 당했다.

캐서린 나이트(1956~)


가석방 없이 최초로 종신형을 집행 받은 호주의 캐서린 나이트는 전 남편들을 죽이고 시체 일부를 현 남편과 강아지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결혼 전 정육점에서 일한 경력으로 칼을 잘 다루던 그녀는 화가 날 때마다 칼로 남편을 위협하다 결국 죽이게 됐는데, 죽인 것도 모자라 그의 가죽을 벗겨 현관에 걸어놓고, 각 부위를 잘라 요리를 해 집에 돌아올 아이들(남편과 전처 사이의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아이들보다 경찰이 먼저 도착해 그녀를 체포, 2001년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엘리자베스 바토리(1560~1614)


‘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로도 설명이 부족한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5세에 결혼했지만, 전쟁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외롭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집안 내력인 간질까지 찾아왔다. 마음과 몸 모두 쇠약해진 그녀는 흑마법 책을 보기 시작했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남편이 51세에 죽자 기다렸다는 듯 시어머니를 성 밖으로 내쫓았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밤마다 많은 여자를 끌어들여 피를 받아 목욕 했지만 귀족이라는 이유로 처형은 면하고, 대신 옥탑방에 갇혀 평생 내려오지 못하는 신세로 여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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