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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Jun 09. 2021

나는 당신의 칭찬이 두려웠습니다

습관처럼 아침 6시에 눈을 떴고, 커튼을 열었더니 하늘이 파랬다. 놓치기 아까운 초여름의 하늘이었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침 산책은 줄곧 문암 생태공원으로 가고 있는데, 그곳이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예쁠 것, 사람이 없을 것.

이른 아침 문암 생태공원엔 사람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뭇잎에 햇살이 부서지는 걸 올려다보며 걷다 보면 가끔 한 둘의 사람과 스치고 그마저도 잠깐이다. 때문에 신이 나면 뱅그르르 돌거나 춤을 추거나 심지어 노래를 불러도 된다(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가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도 파란 공원이 예뻤고 사람이 없었다. 나는 한껏 들떠 가장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꽃을 바라보고, 노래를 듣고, 몸을 살랑였다. 그러다 출근 시간이 다 되어 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산책해요?”
나는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 사람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예뻐서 말 걸어봤어요.”

넓디넓은 공원엔 거의 그 사람과 나만 있었다. 확실한 건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말문을 잃었다.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하는지, 내가 대답해야 할 말은 맞는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던지며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반응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리고 가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이었는데, 순간 흐흐 웃어버렸다. 폐에서 바람이 스르륵 빠지듯 기운 없이, 그러나 확실히 상대방에게 당신의 말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았음은 어필할 수 있게 웃어버린 것이다. 짧은 순간 나의 무의식적인 보호 본능이 그렇게 반응해야만 내가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그 사람은 나의 웃음에 따라 웃었다. 굴욕감을 느꼈다. 나는 돌아서서 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만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만큼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자기가 나에게, 그러니까 자기 눈에 예뻐 보인 어떤 여자에게 칭찬을 건넴으로써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여자의 입장을 가져보지 못한 자의 우매함과 무례함에 불가하다.

나에게는 그 사람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에서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은 유일하게 상대방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을 만큼의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에 달려있다. 거기엔 나의 노력이나, 능력, 체력 같은 것들은 변수가 되어주질 못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헬스를 다니고, 폴을 타서 악력을 키운다 한들 나는 남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질 수 없다. 이것은 선천적인 한계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심을 항상 마음 한편에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나에게 어떠한 위해 없이 칭찬만 건넨 것이므로, 그 사람 입장에서는 선한 의도의 칭찬일 확률이 높지만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두려웠다. 앞으로 너무 이른 시간에는 공원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어 슬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의 장소를 빼앗긴다는 박탈감이었다.

또한 좋은 말이든 안 좋은 말이든 나는 그 사람에게 나를 평가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왜 그 사람은 멀쩡히 길 가는 타인에게 말을 걸어서 “예쁘다.”라는 주관적인 평가를 전하는 것일까? 당신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면, 나에게는 “아저씨는 조까치 생겼어요.”라고 말할 권한 있는 건가?

아무튼 여러모로 당신의 칭찬은 나에게 칭찬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 공포, 불안감, 굴욕감, 불쾌함이었다. 당신이 타인에게 저러한 감정들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쓰레기가 아니라면, 앞으로 평가나 그에 따른 칭찬은 속으로만 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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