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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Jun 17. 2021

[야학봉사일지]7. 포옹

“아니, 아빠. 이게 뭐냐고!”
“아빠는 너 돈 안 쓰고 차 깨끗이 다니게 하려던 건데.”
“아니, 누가 해달라고 했냐고! 이거 고치려면 또 며칠 들잖아! 진짜 짜증 나게!”

아빠는 딸내미가 부순 차 돈 안 들이고 고쳐주겠다며 며칠 낑낑 댔는데, 갈수록 본의 아니게 차 외관이 지저분해졌고 나는 이때다 싶어 내 안에 있던 짜증들을 아빠한테 모조리 부어 버렸다. 아빠는 딸을 달래도 보고, 타일러도 보다가 그만 같이 욱해서 집으로 가버렸다. 나는 못 다 낸 짜증이 남아 한참 인상을 찌푸리다가 겨우 겨우 야간학교에 갔다.

오늘은 짧은 글짓기를 하는 날이었다. 주제는 한글을 배워서 좋은 점이나 한글을 배우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쓰고 싶은 문장들을 읊었고, 나는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받아 적었다. 그런데 정숙 학생만 가만히 있었다. 쌍자음 공부할 때도 내내 의욕이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공부하기가 싫은가 싶어 물어봤다.

“오늘 공부하기 많이 싫으세요?”
“아니, 마음이 슬퍼서.”

정숙 학생의 눈이 금방 빨개졌다. 놀란 마음에 덥석 정숙 학생의 손을 잡았다.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일이 많이 고되셨어요?”
정숙 학생은 눈을 깜빡이며 겨우 눈물을 담아내다가 말을 이었다.
“남동생이 누나 언제 글 배우냐고, 누나 편지 받고 싶다고 자꾸 그러는데. 내가 편지를 쓰지도 못하고, 누가 써줘도 정확하게 읽지도 못하니까. 그게 너무 답답해서. 몇 년을 다녀도 내가 그거 하나 못하니까.”

나는 그저 정숙 학생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었고 정숙 학생이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내가 고른 질문은 “조바심이 드세요?”였다. 정숙 학생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너는 나를 하나도 알지 못하는구나.’의 눈빛이었다면 해석이 과한 걸까.

“남동생이 하늘나라에 가서. 이젠 편지를 쓰지도 못해.”
정숙 학생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정숙 학생의 편지를 꼭 받고 싶다며 자꾸만 누나를 채근하던 그 남동생은 이제 여기 없다. 그럼 이제 정숙 학생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후회? 한탄? 서러움? 아니다. 그런 것들이 아닌 것 같다. 그래, 나는 어떤 단어로도 정숙 학생의 감정들을 추측해낼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와 함께 글짓기를 지도해주시던 선생님이 정숙 학생에게 말했다. “편지를 쓰고 그걸 선생님이랑 계속 반복해서 읽어. 외울 때까지. 그러면 읽어줄 수 있잖아. 어때?”
정숙 학생은 대답했다.
“그럴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일 때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건, 마음대로 가정하는 것뿐인가 보다.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지만 남동생이 내가 읽는 편지를 들을 수 있으리라 가정하는 것. 그런 가정이라도 해야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지.

갑자기 온갖 짜증을 다 쏟아붓다 떠나보낸 아빠가 생각났고, 당장 미안하다 말하고 싶어 학생들이 글을 쓰는 동안 몰래 문자를 보냈다.

“아빠, 짜증내서 미안해.”
그리고 덧붙였다.
“딸내미가 짜증 낼 곳이 아빠밖에 더 있겠어. 짜증 많이 내서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가끔 짜증 낼 게.”
금방 답장이 왔다.
“OK.”

머리로는 다 이해하면서도 부리고 싶으니까 부리는 짜증을 마음껏 받아줄 사람이 이 세상에 아빠 말고 또 있나, 온갖 짜증 다 받아놓고 앞으로도 짜증 내겠다는데 “OK”라고 보낼 사람이 아빠 말고  있나. 이 세상에서 아빠가 없어진다면 나는 누구에게 짜증 부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빠보다는 빨리 죽어야지!’ 후레자식 같은 결심을 했고, 그게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수업이 끝났고 나는 정숙 학생 주위에서 쭈뼛쭈뼛했다. 정숙 학생은 그녀의 성격대로 쿨하게 “안녕히 계세요. 나 내일 안 와요. 백신 맞아요.”하며 교실을 나섰는데 나만 괜히 “백신 어디서 맞으세요?” 하면서 쫓아가다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랑 한 번 안아요.”
정숙 학생이 웃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나는 정숙 학생의 등을 정성을 다해 쓰다듬었고, 그녀의 평온을 온 마음을 다해 빌었다. 마음이 울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안아보는 것, 쓰다듬어 보는 것, 평온을 빌어주는 것뿐이란 걸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안았을 때, 그녀도 나를 안았다. 내가 그녀를 쓰다듬었을 때, 그녀도 나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녀가 오늘 밤 부디 평온하길 빌었고, 그녀는 나에 대해 무엇을 빌어주었을 진 알 수 없지만 말하지 않은 언어에 대해선 느끼기만 해도 괜찮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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