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20분이나 30분쯤 빨리 도착하면 어김없이 서점에 내려갔다. 자주 가는 건 아니니까 갈 때마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 헷갈려 더듬더듬 서점을 찾곤 했다.
서점은 갈색 나무 인테리어에 색색의 책이 액세서리 역할을 했다.
나는 에세이 신간도 뒤적이고, 베스트셀러 칸도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골라잡아 어딘가에 걸터앉았다.
딱딱한 책을 읽으면 딱딱한 표정을, 따뜻한 책을 읽으면 얕은 미소를, 야한 내용이라도 나오면 책을 좁게 펴고 모조리 상상하며 읽었다.
그러다 보면 금방 버스 시간이 되었고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서점을 나섰다.
오늘도 고속버스터미널에 왔는데, 일정까지는 시간이 남아 서점을 찾았다. 에스컬레이터로 한 층 내려가 톰보이를 끼고 꺾어서 화장품 가게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메가박스가 있고 그다음에 서점. 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다시 톰보이 앞으로 돌아갔다. 톰보이를 끼고 꺾어 이번엔 화장품 가게 왼쪽으로 걸어가면 서점이. 또 없다.
결국 원피스를 파는 점원분께 여쭤봤다.
"여기 서점이 있지 않았나요?"
"서점 없어졌어요."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던 그 서점이 없어졌다. 네이버 지도에 서점을 검색해본다.
정말 없어졌다.
왜 없어졌을까. '장사가 안돼서?' '돈이 안 되니까?'
그래도 이렇게 유동인구가 많은데? 터미널인데? 책 사고 싶은 유혹이 가장 큰 게 터미널 아니었나?
그래, 장사가 안 돼서 없어진 게 아니라 사장님이 업종을 바꿨을 수도 있지. 뭐.
그럼 다른 사람이 고속터미널에 서점을 열어줄 수도 있는 건가. 이 큰 터미널에 서점은 있어 마땅하잖아.
지난달에 책 한 권 내 돈으로 사 읽지 않은 내가 서점이 없어졌음을 납득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다가 멈춘다. 책을 사 읽지 않은지 꽤 오래 지났으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내가 이 큰 터미널에 서점 하나 없다는 사실에 약 올라한다.
고속버스터미널에 서점이 없어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터미널 11번 게이트 앞에 앉아
어쩌면 매번 책만 읽고 재미만 챙긴 뒤 유유히 서점을 나선 덕에 없어진 서점을 그리워했다.